작성일 2023-12-04
고모할머니
고모할머니는
지나가는 영구차를 보고도
머리 숙여 인사를 하신다.
야속한 세상
다 잊으시고 편안하게 가시오.
고모할머니는
자동차에 치인 개구리를 보고도
머리 숙여 인사를 하신다.
부디 다 용서해 주고
잘 가시게.
살다 보면 기쁜 일만 생기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 이 시간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자연재해로, 산업재해로, 전염병으로, 교통사고로, 병환으로 다시 못 올 먼 길을 떠나고 있어요. 나이가 들어 제명대로 살다 가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뜻하지 않게 떠나게 되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잖아요. 남은 가족들의 아픔과 슬픔은 그 무엇으로도 달래기가 쉽지 않을 거예요.
오늘 낮에 아궁이 불쏘시개로 쓰려고 뒷산에 솔가리(말라서 땅에 떨어져 수북이 쌓인 솔잎)를 긁으러 가는 길에, 지나가는 자동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와 어린 고라니를 보았어요. 조금 더 가다 보니 너구리도 한 마리 죽어 있었어요. 그 가운데 고양이는, 자동차가 무참히 짓밟아 뼈와 살이 길바닥에 납작하게 붙어 있었어요. 죽은 지 사나흘쯤 지났나 봐요. 자동차에 치여 죽은 고양이와 고라니와 너구리는 두 번 다시 가족들 품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었어요.
‘다른 존재들을 멸종시키면서 인간들 스스로 멸종 위기종이 되는 건 아닐까? 다른 동물이 하나 둘 다 죽고 나면 덩그러니 인간만 살 수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지나가는 영구차를 보고도 인사를 하고, 자동차에 치인 개구리를 보고도 인사를 하던 고모할머니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키우던 닭 다섯 마리한테도 이름을 붙여 불러주시고, 산밭에도 이름을 붙여 일일이 불러주었어요.
나는 고모할머니처럼 길가에 죽은 뱀한테도 인사를 해요. ‘부디 다 용서해 주고 잘 가시게.’ 그리고 산밭마다 이름을 붙여 불러주어요. 개울 옆에 있다고 ‘개울밭’, 샘 옆에 있다고 ‘샘밭’ 햇살이 잘 든다고 ‘햇살밭’, 박하가 자란다고 ‘박하밭’, 이렇게 이름을 부르다 보면 마치 친구처럼 정이 들어요.
여러분도 길가에나 학교에 있는 나무한테 이름을 붙여 불러보세요. 봄날엔 연둣빛 새순이 예쁘게 돋아나고, 가을엔 울긋불긋 단풍도 더 곱게 물들지 않을까요?
글쓴이 서정홍 시인
(소개- 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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