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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23-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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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할아버지 직업은?

농부입니다.

 

그럼 아버지는?

농부입니다.

 

농사지어

먹고살기 힘들 텐데?

 

선생님, 오늘 아침밥

먹고 왔습니다. 

 

얼마 전, 서울 강남에 있는 고등학교에서 전화가 왔어요. “농부 시인님, ‘삶을 가꾸는 시 쓰기라는 제목으로 학생들한테 강연을 해 줄 수 있는지요?” 농사일도 소중하지만 학생들 만나는 일도 소중한 일이지요. 더구나 강연 제목도 삶을 가꾸는 시 쓰기라 기쁜 마음으로 가겠다고 했어요. 그다음 날, 전자우편이 왔어요. “농부 시인님, 강사 카드를 전자우편으로 보냈으니 살펴보시고 빈칸을 채워 보내주면 고맙겠습니다.” 그래서 그 빈칸을 채워 보냈어요.

 

이름 : 서정홍. 소속 : 모든 생명을 품어 살리는 흙. 근무처 : 오랜 역사가 살아 숨 쉬는 마을 들녘. 직위 : 산골 농부. 최종 학력 : 생태귀농학교. 전공 분야 : 지구를 살리는 마지막 희망, 소농.

 

전자우편을 보내자마자 전화가 왔어요. “저는 학교 강연 담당 교사입니다. 이렇게 멋진 강사 카드는 태어나서 처음 봅니다. 그런데 최종 학력이 생태귀농학교라 적혀 있는데, 어떤 학교인지 설명해 줄 수 있습니까? 다른 학교는 다닌 적이 없으신지요?” “제가 학교를 다니긴 했지만, 친구들과 경쟁하는 거 말고는 딱히 배운 게 거의 없습니다. 그래서 최종 학력을 꼭 적어야 할 때에는 생태귀농학교라 적습니다.” “어떤 학교인지요?” “사람이 자연을 보살피며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보자고 만든 학교예요. 자연의 순리에 따라 농사지으며, 모든 이들에게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길을 찾아가는 학교지요. 그래서 서로를 고달프게 하는 경쟁 같은 건 없는 학교예요.” “아아, 정말 좋은 학교네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 전화를 끊고 점심을 먹는데, 얼마 전에 이웃 마을에 사는 산골 아이가 했던 말이 생각났어요. “우리 할아버지 직업은 농부에요.” 그 말이 어찌나 당당하고 멋있게 들렸는지 아직도 가슴이 따뜻해요.

 

 

글쓴이 서정홍 시인

약력

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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