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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23-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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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어머니는

연속극 보다가도 울고

뉴스 듣다가도 울고

책을 읽다가도 울고

 

내가 말을 잘 안 듣고

애먹일 때도 울고

시집간 정숙이 이모가 보낸

편지 읽다가 울고

혼자 사는 갓골 할머니

많이 아프다고 울고

 

그러나

어머니 때문에는 

울지 않습니다.


젊은 시절, 아버지가 일하시다 발목을 크게 다치는 바람에 아무 일도 못하게 되었어요. 그 뒤로 어머니는 혼자 힘으로 식구들을 먹여 살리려고 농장이나 막노동판에서 일을 했어요. 일을 마치고 돌아온 어머니는 밥 먹을 힘조차 없다며 씻지도 않고 그대로 쓰러져 자는 날이 많았어요. 어머니 손은 공사장 벽돌보다 더 거칠고 단단했으며, 쩍쩍 갈라진 발은 동상에 걸려 차마 두 눈 뜨고 볼 수가 없었어요.

몹시 추운 어느 겨울밤이었어요. 어머니는 자다가 일어나 옷을 만지작거리고 있었어요. 퇴근길에 겨울 웃옷을 하나 주웠는데 어쩌면 좋겠느냐고 내게 물었어요. “어머니 몸에 맞으면 그냥 입지요. 누가 버린 것 같은데.” 어머니는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걱정 어린 눈빛으로 말했어요. “아니지, 아니야. 이렇게 좋은 옷을 누가 길거리에 버렸겠냐. 지금쯤 옷 주인이 애타게 찾고 있을지도 모르잖아.” 춥고 깊은 겨울밤에 어머니와 나는 한 시간 남짓 걸어서 그 옷을 제자리에 두고 왔어요.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어요.

그해, 제가 중학교 다닐 적에 어머니는 돌아가셨어요. 아랫마을에 살던 외삼촌이 오셔서 어머니 병명은 영양실조라 했어요. 어린 자식들 굶기지 않으려고 일밖에 모르고 살아온 어머니였어요. 한평생 옷 한 벌 사 입지 못하고, 화장품 한 번 바르지 못하고, 파마머리 한 번 하지 못한 어머니였어요.

저는 살아가다 어렵고 힘든 일이 생기거나 쓸데없는 욕심이 일어나면 마음속으로 어머니하고 불러보아요. 서너 번 부르다 보면 나도 모르게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요. 이날까지 어떠한 처지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까닭은, 그 눈물이 거름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에요. 

<어머니>란 시는, 참기름병 꿀병 할 것 없이 거꾸로 세워 마지막 남은 한 방울까지 다 쓰고 말겠다는 아내를 보면서 쓴 시예요. 이 세상 모든 어머니가 자식이나 남을 위해 울지 말고 자신을 위해서도 울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쓴 시예요. 여자든 남자든 울고 싶을 땐 실컷 울어야만 속이 시원하고 앞이 환하게 보이거든요.

 

글쓴이 서정홍 시인

 

약력:(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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