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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2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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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자동차 공장 사장이

자동차값을 정하는데

컴퓨터 공장 사장이

컴퓨터값을 정하는데

 

농부인 내가 심고 가꾼 농작물을

내가 값을 정하지 못하다니!

이제부터 내가 값을 정해야겠다

 

정규직과 집 있는 사람한테는

조금 더 받고

비정규직과 집 없는 사람한테는 

조금 덜 받아야겠다

 

올해도 300평 남짓 되는 산밭에 감자를 심었어요. 한해도 거르지 않고 감자를 심는 까닭은 첫 번째, 제가 감자를 좋아하기 때문이에요. 감자밥, 감잣국, 감자부침, 감자볶음, 감자찌개도 좋아하지만 아궁이에 감자를 구워 먹으면 세상 부러울 게 없어요. 두 번째, 다른 농작물에 견주어 농약을 뿌리지 않아도 병치레 하지 않고 잘 자라요. 세 번째, 비닐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아도 때에 맞추어 김을 매고 북주기만 잘하면 큰 걱정이 없어요. 네 번째, 누구나 즐겨 먹는 음식이라 팔거나 나누어 먹기도 좋아요. 다섯 번째, 무엇보다 멧돼지가 감자를 싫어해서 울타리를 치지 않고도 마음 놓고 농사지을 수 있어요.

겨울이 지나 얼었던 땅이 풀리면 산골 농부들은 감자농사 준비를 해요. 씨감자를 살펴보고, ‘밭지도를 그리고, 거름을 뿌리고, 봄비가 많이 내리기 전에 이랑을 갈아 두둑을 만들어 놓고, 때가 되면 씨감자에 재를 발라 정성껏 심고, 풀이 나면 김을 매고, 땅 속에 감자면 북주기를 하고, 하얀 감자꽃이 피면 하염없이 바라보고, 유월 하지 무렵에 감자를 캐고, 벌레 먹은 감자와 너무 작은 감자를 가려내어, 귀한 딸 시집보내듯이 상자에 곱게 담아 도시 사람들한테 택배로 보내요.

올해는 아내와 마주앉아 감자값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여보, 몇 해 전부터 감자 값을 올리지 않았으니, 올해는 조금 올리면 어떨까요? 상자 값이랑 택배비도 오르고 다른 물가도 너무 많이 올랐어요.” “그럼 주문한 사람 가운데 가난한 사람한테는 값을 올리지 말고요. 살기 넉넉한 사람한테만 조금 올려 받으면 어떨까요?” “으흠, 그거 좋은 생각이네요.” 

아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이제부터>란 시를 썼어요. 어느 날, 이 시를 읽은 이웃 농부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우와, 그것 참 좋은 생각이에요. 우리도 그래야겠어요.” 며칠 뒤에 도시에서 늙으신 부모님 모시고 살아가는 가난한 친구한테서도 전화가 왔어요. “서 시인, 지구온난화와 기후변화보다 더 무서운 게 불평등이라는 말 들어봤는가? 자네 시를 읽고 나니 어쩐지 힘이 나네그려. 비정규직에 집도 없는 나한테는 감자값 조금 덜 받는다니! 흐흐 고맙기도 하고 위로가 되는구먼.”

 

글쓴이 서정홍 시인

(약력 : 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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