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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23-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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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회관 텔레비전 앞에서

 

개 목욕시키는 걸 보고

하이고

개 발톱 깎아 주는 걸 보고

하이고

개 목도리 해 주는 걸 보고

하이고

개 안고 다니는 걸 보고

하이고

개 병원에 데리고 다니는 걸 보고

하이고

끼니때마다 개밥 주는 걸 보고

하이고

늙은 부모는 요양원에 내팽개치고

우짜모 좋노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선진국이 되기까지 누가 애를 많이 썼을까요? 힘들고 돈벌이 안 되는 줄 알면서도 때가 되면 땅을 갈아 씨를 뿌리고, 아무리 오랫동안 일을 해도 경력수당도 없고, 정년퇴직이나 퇴직금도 없고, 남 앞에 내세울 명함 한 장 없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수천수만 년 동안 아이들의 미래를 지켜준 사람은 누굴까요? 많이 배우거나 똑똑하지 못해서 주식 투기를 하거나 집이나 땅을 사고팔아 떼돈을 벌지는 못해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정직하게 땀 흘리며 살아온 사람은 누굴까요?

도시를 떠나 자연 속에서 자연을 따라 농사지으며 알았어요, 힘들고 고달픈 농사일 마다하지 않고 우리 겨레를 먹여 살린 농촌 어르신들이 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애쓴 분들이라고. 더구나 온갖 차별과 시련 다 이겨내고 들풀처럼 묵묵히 살아오신 농촌 어르신들이야말로 이 시대, 진정한 영웅라는 것을 알았어요. 그런데 이분들이 반려동물인 강아지나 고양이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 게 우리나라 현실이에요.

이 시대, 진정한 영웅인 농촌 어르신들이 마을 회관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한숨을 푹푹 쉬어요. “하이고, 아무리 강아지도 좋고 고양이도 좋지만 저게 저게 무신 짓이고.” 이렇게 한숨이라도 쉬어야만 살 수 있으니까요.

어르신을 보살피지 않고 학대하는 일은, 스스로를 짓밟는 일이에요. 왜냐하면 우리 모두 머지않아 늙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세상천지에 늙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니까 강아지와 고양이한테 쏟는 시간과 정성만큼이라도, 홀로 버려진 어르신들이나 몸과 마음이 아픈 분들께 관심과 사랑을 베풀어 주면 좋겠어요. 지나친 욕심일까요?

 

글쓴이 서정홍 시인

(약력 : 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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