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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8-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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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규

현 현대의전연구소 소장

저서) '내 고향 삼산고을'(2016.12, 성심출판사)

 

귀향이라는 말이 요즘 사회적으로 널리 회자되고 있다. 언론은 물론이고 오륙십 대의 모임에서도 단골 화제 거리가 된지 오래다. 아무렴, 도시에서 직장을 다니다 퇴직한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쯤 귀향을 고민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겠는가.

 

고향을 떠나 30여 년간 서울에서 공직생활을 한 나 역시 예외일 리 없다. 초중고를 고향에서 마친 후 떠난 오랜 타향살이, 그 속에서 늘 생각의 한 언저리를 차지하던 것이 고향 아니던가. 이제 공직을 나름대로 마무리한 처지라 귀향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가족도 기꺼이 동의했다. 그래서 부모님이 떠나시며 물려주신 옛집에 둥지를 텄다. 오래 묵은 먼지를 훌훌 털어내고 간단한 세간도 들였다. 초여름부터 신선한 바람이 이는 추석까지 이산가족이 되었다. 하루하루 먹거리를 스스로 해결하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고등학교 시절 읍내에서 한 자취경험이 있질 않은가. 이렇게 나의 귀향생활은 시작되었다.

 

무엇보다 자연 환경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도로가 시원하게 포장 되고, 꾸불꾸불하던 들판도 제법 반듯하게 정리됐다. 대형 비닐하우스도 들판 여기저기 자리하고, 전에 없던 건물들이 산 중턱에 들어섰다. S자를 그리며 자연스레 형성되었던 예전의 냇가도 농지정리 과정에서 일제 정비가 되었다. 전반적으로 삶의 조건이 크게 나아진 것이다.

 

물론 허전한 면도 있다. 산이 울창한 숲으로 뒤덮여 출입이 어려워지고, 냇가를 평탄하게 정비한 탓에 어릴 적 벌거벗은 채 멱 감고, 소를 먹이며 산허리를 놀이터 삼아 뛰 놀던 그런 곳이 더 이상 없어졌다. 수정처럼 맑던 그 시냇물에 뛰놀던 피라미, 모래무지, 가재며 미꾸라지, 뱀장어를 더 이상 찾아보기도 어렵게 되었다. 이러한 현실이 너무나 아쉽다. 생태 하천이 사라진데다 농약을 많이 사용하고, 생활 오폐수까지 더해진 결과다.

 

그나마 다른 지역에 비해 산천이 그런대로 잘 보전되어 있는 편이다. 지역발전이라는 미명아래 이루어진 난개발로 고향을 잃은 곳이 어디 한 둘인가. 그에 비해 내 고향은 반세기라는 시차를 두고도 큰 변함이 없으니 너무나 고마울 따름이다

 

반백에도 고향의 품에 안길 수 있으니 말이다. 깨끗한 공기와 맑은 물은 기본이고, 집 마루에 걸터앉아 앞산의 능선이며 계곡을 맘껏 감상할 수 있으며 밤이면 환한 달빛과 반짝이는 별들을 마주할 수 있는 고향, 더 이상 뭘 바라겠는가.

 

어릴 적 그 많던 개구쟁이들이 자라 도시로 떠나고 없다. 요즘은 한낮에도 적막하기만 하다. 70년대 전후만 해도 아이들 목소리로 골목마다 왁자지껄하고, 아침이면 등굣길이 부산 했다. 그렇게 다니던 초등학교가 문을 닫은 지도 벌써 20년이 되었다. 농촌 인구가 크게 줄어든 탓이다. 정든 학교 건물은 철거되고, 뛰놀던 운동장에는 잡초만이 무성하다. 지금은 비석만이 서서 그곳이 옛 모교 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오늘날 고향 마을을 지키고 있는 주역은 할머니들이다. 나에게 이들에 대한 호칭은 여전히아지매.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먼저 살다간 사람들의 삶의 애환을 이해하게 된다. 대부분은 소작농이나 몇 마지기 논밭을 일구며 가난하게 살았다. 그런 가운데 그 좁은 들길과 산길 걸어 합천, 삼가를 힘겹게 오가며, 유교식 관혼상제에 힘들어 했던 지난 세월의 묻어 두었던 이야기가 끝날 줄 모른다. 누구든 회고록을 쓴다면 몇 권씩은 될 것이라고 한다.

 

힘든 농사일에다 고된 시집살이를 이겨낸 아지매들의 절절한 체험담에 가슴이 저밀 때도 있다. 그렇게 험한 세상을 헤쳐 나와 요즘은 그런대로 여유 있게 보낸다. 한 여름 아침저녁 서늘할 때는 논밭에 나가 일을 하다 한낮에는 정자나무 그늘에 모여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운다. 가끔씩 손전화로 도시 자녀들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큰 위안이 된다.

 

고향에 머무는 동안대병 3()’이라 불리는 허굴, 봉화, 악견 세 산에도 오르고, 새로 만든 제방 길을 아침저녁으로 거닐어 본다. 반세기 전 어린 시절을 뒤돌아보며이렇게 변해가는 게 인생이구나, 산천도 이렇게 변해가는 구나하고 이런 저런 생각에 잠겨 호젓하게 산책할 수 있어 참 좋다. 언제쯤이었나, 백중과 추석 사이인가 보다. 그 땐 제법 큰 동네마다 콩쿨대회, 아니 노래자랑대회가 열렸지. 그때 또래끼리 이곳저곳 어울려 다니며 젊음을 만끽하기도 했다. 푸른 하늘아래 열린 가을운동회며, 가을 시제 때 줄 서서 떡을 얻어먹던 일이며, 어쩌다 한번 들어오던 가설극장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그런 속에서 오늘날과 같이 우리 지역의 변화를 크게 이끈 동력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해내 고향 삼산고을이라는 작은 향토사 자료집을 펴냈다. 이 산골에 신작로가 언제 뚫리고, 초등학교는 어떻게 개교되었으며, 삼산고을을 문명세계로 이끈 전기 전화는 언제 들어오고, 오늘날과 같이 영농기계화를 앞당기게 된 농지정리는 언제 되었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라는 생각에서다. 이런 궁금한 점을 수집해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해인사 소리길, 창녕 우포늪이며 거창 신원의 양민학살사건추모공원 등 인근 명소도 답사를 했다. 어떤 인연으로이주홍어린이문학관에서 수필공부까지 하게 되는 행운도 얻었다. 내 안에 깊이 잠들고 있는 문학적 소질을 늦게나마 흔들어 깨워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아닌가.

 

빼서는 안 될 즐거움이 또 하나 있다. 6월 중순경인가. 앞산 중턱에 산딸기 말이다. 어린 시절 여름 아침 일찍 산 초입에서 소를 먹이다 따다먹던 빨갛게 익은 그 산딸기 맛에다 영양도 좋아 매일 따다 과일 주스에 넣어 먹고, 소주에도 담아 놓았다. 부엌 한편에는 산딸기 술이 한참 익어 가고 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게 자연의 순리가 아니겠나. 전반적으로 농촌 인구가 줄어드는 속에서 그래도 희망이 조금은 보인다. 요즘 합천호 일대에는 외부 관광객이 부쩍 눈에 띄고, 귀향 귀촌도 늘어나는 추세라고 한다. 머잖아 고속도로도 개통될 예정이다. 앞날을 예측할 수 없는 이러한 변화의 물결 속에 우리 고을이 정겹고 풍요로운, 청정한 모습으로 오래오래 남아 있길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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