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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7-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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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홍어린이문학관 입주작가 박영희

 

휴대폰이 부르르 제 몸을 떨며 나를 찾는다. 딸아이인가? 반가운 맘에 폰을 열어보니 성당에서 일괄적으로 보낸 연도 문자였다. ‘정 마리아 선종 12시 반별연도 참석

 

마리아 할머니가 영면하셨다.

 

"주여~ 마리아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마리아님과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낯설고 물 설은 전국에서 제일 오지라는 합천에 내가 첫발을 디뎠을 때, 나와 첨으로 인연을 맺은 어른이시다. 그때의 마리아님은 예순 중반의 연세에 웃음이 얼굴에 가득하신 곱게 나이 드신 분이셨다. 종교가 같아서 일까. 조그맣고 젊은 이방인인 나를 참 많이 예뻐하셨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 시키고 혼자 계셨으니 며느리 같은 나를 당신의 말벗으로 두고 계셨는지도 모르겠다. 살림도 어설펐고, 네 살 배기 딸아이와 육아로 낑낑거리며, 남편 오기만 종일 눈 꼽아 기다리는 어린 새댁이 많이 안쓰럽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분. 삼십년 넘게 도시생활에 젖었던 풋내기 새댁에겐 이곳, 시골생활은 결코 만만치가 않았던 건 사실이다. 그 시절 나는 이곳은 너무 답답해.... 삼년만, 꼭 삼년만 살고 이사 갈 거야라는 말을 노래 부르듯이 입에 달고 지냈었다.

 

어디 세상살이가 내 뜻대로 다 되더냐만, 그렇게 세월은 지나갔다. 흐르는 시간 속에서 유리같이 맑고 부서질 것 같았던 나를 투박하고 진득한 시골옹기에 담기게 만든 분은 마리아 할머니시다. 그리고 나 역시, 친정엄마같이 푸근하고 가슴이 넉넉하신 마리아님을 곧잘 따르고 좋아했었다. 마리아님이 직접 일구어 가꾸신 오이, 상추, 고추, 부추를 가져다주신 날은 우리 집 식탁이 된장찌개와 함께 풍성해지는 날이었다. 당신 손주보다 더 귀여워했던 딸아이의 친구도 되어주고 까칠한 내 입맛에 맞을까 조심스레 건네주던 열무김치의 추억하며, 현관 앞에 슬며시 놓고 간 조금은 짰던 밑반찬의 기억도 내겐 너무나 소중한 것들이다.

 

마리아님의 반찬은 무조건으로 맛있어지게 나의 입맛이 길들여졌을 즈음, 마리아 할머니는 청주에 사는 아들네로 가셨다. 홀어머니를 두고 볼 수 없었던 자식들의 지극한 효도방법 인지라 마리아할머니는 두말없이 자식을 따라 떠나셨다.

 

한동안 나는 미사시간만 되면 마리아 할머니를 두리번거리며 찾았었다. 삼년만 살다 간다고 야무지게 다짐했던 내가 이십 년째, 이곳에 몸담은 것도 따지고 보면 모두가 마리아 할머니 덕분인 것 같다. 도시에서는 감히 보기 힘든 보석처럼 쏟아지는 밤하늘의 별들을 보며 윤동주의 시를 읊으며 감격하며 사는 것도, 도로가 제대로 열리지 않아 꼬불꼬불한 산을 휘감는 운전이 넘 고통스럽기까지 했던 지릿재 고개를 수긍한 것도, 밥 짓는 냄새가 동네를 가르는 구수함도 예술이라고 생각하며 시골생활에 푹 빠지게 적응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마리아 할머니가 계셨기 때문이었다.

 

연도를 하는 내내 눈물이 앞을 가린다.

 

마리아할머니께서 합천 요양원으로 오셨을 때는 표정 없는 얼굴에 거동조차 못하시고 휠체어를 타고 계셨다. 못 알아 볼만치 변해버린 마리아 할머니를 뵈었던 날, 모시고 갔으면 잘 모실 것이지 자식들이 어떻게 모셨기에 이리되셨는가 싶어 누구에 대한 원망인지 속상한 맘이 한 가득인 채로 집으로 왔었던 나의 기억이 새롭다.

 

요양원 생활 1년 동안 나는 당신께서 천상문을 열 수 있게 해 주는 도우미의 자격으로 자주 그분을 찾아뵈었다. 천주교 신자에게 묵주기도는 하늘로 가는 열쇠라는 걸 마리아 할머니도 잘 알고 계셨던지, 정신력이 강하셨던 당신의 손에는 늘 상 묵주가 들려 있었다. 당신께서 묵주기도를 통해 죽음을 당당하고 겸손하게 맞이하는 마음을 갖는다고 생각하셨을까. 묵주 알 하나하나가 천상으로 가는 계단인 것을 아시기에 말이다.

 

내가 지금까지 몸담고 있는 합천에서 처음으로 정을 주고받은 인연인 마리아 할머니의 마지막까지 함께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주님의 은총으로 감사한 마음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으로 오늘은 두 번 연도를 다녀왔다. 내 온 발걸음 하나하나 말 한마디는 주님께 봉헌된다.

 

주님~ 마리아의 영혼에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에게 비추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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