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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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수연 농사를 지으며 든 생각을 글과 노래로 만든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가끔 공연 하러 방방곡곡 다닌다. |
그 어둡고 추운, 푸른
이성복
겨울날 키 작은 나무 아래 종종걸음 치던 그 어둡고 추운 푸른빛,
지나가던 눈길에 끌려나와 아주 내 마음 속에 들어와 살게 된 빛
어떤 빛은 하도 키가 작아, 쪼글씨고 앉아 고개 치켜들어야 보이기도 한다
(아, 입이 없는 것들 / 문학과지성사) |
요즘은 한 가지 일을 십 년 동안 하기가 어렵대요. 워낙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경쟁도 치열하니 다양한 일을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거겠지요. 그 때문에 ‘n잡러 시대’라는 말이 생기기도 했고요. 어느덧 농부로 산 지도 십 년이 넘었어요. 지난해부터 나에게 농사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기 시작했어요. 제가 짓고 있는 생태 농법은 몸이 편한 일도, 돈을 많이 버는 일도 아니에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하고, 잔병치레를 자주 했던 저와 궁합이 좋은 일도 아니죠. 그런데 어떻게 십 년이라는 시간 동안 농부로 살 수 있었을까요? 농부가 되기 전에 저는 책을 좋아하는 학생이었어요. 책에서 말하는 어른은 대게 사무실에 앉아, 재바르게 업무를 쳐내는 모습이었어요. 그래서 당연히 저도 앞으로 책상에 앉아 머리를 쓰며 일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몸을 쓰는 일은 힘들고 고달프고, 외로운 일이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제가 농부가 되고 가장 먼저 배운 게 뭔지 아세요?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없으면, 이 세상은 무너질 거라는 것이었어요. 농부도 없고, 택배 기사님도 없고, 공장과 주방에서 일하는 분들이 없다면, 어떻게 이 많은 세상 사람이 밥 먹고 살겠냐는 거죠. 그 사실을 알았을 때, 저는 부끄러움을 느꼈어요.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 저는 제가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산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다 농사를 배우면서, 농부의 마음을 배우면서, 세상에는 몰라서는 안 되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 뒤로 저는 목표가 생겼어요. 제가 몰라서는 안 되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가져야겠다고. 시를 읽으면서, 이성복 시인은 그런 눈이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작지만 아주 아름다운 것을 발견했던 거죠. 그러니 ‘쪼글씨고 앉아 / 고개를 치켜들어야’ 보이는 빛까지도 소중히 눈에 담아 시를 쓴 것이 아닐까요. 제가 지금껏 농사를 놓지 않고 살아온 이유도 거기에 있어요. 몰라서는 안 되는 것을 알아가기 위해.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 위해. ‘그 어둡고 추운 푸른빛’ 같은 것을 발견하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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