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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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 김수연 농사를 지으며 든 생각을 글과 노래로 만든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가끔 공연 하러 방방곡곡 다닌다. |
농부와 두더지 서와
농부는 속상해서 두더지 놈들 고구마밭 다 뒤집어 놨네!
두더지는 신이 나서 누가 우리 집에 고구마를 가져다 뒀지? |
어제는 제법 봄 같은 바람이 불었어요. 성큼성큼 다가오는 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농부는 걱정이 많은 직업이에요. 요즘은 특히 그래요. 일기예보를 예민하게 확인해야 하고, 수시로 밭을 들락거리는 동물들도 경계해야 해요. 한 번 발길이 들기 시작하면, 유행처럼 온 동네 동물들이 밭을 찾아오거든요. 두 해 전에는 고라니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탓에, 농사 시작도 전에 새순이 뜯겨나가기 일쑤였어요. 지난해에는 새끼 멧돼지들이 울타리 밑을 파고들어 와, 고구마를 다 뒤엎어 놓았지요. 아직 7월이라 영근 고구마가 없으니, 찾다 찾다 온 밭을 뒤엎어버린 거예요. 그 탓에 몇 번이고 고구마를 다시 심고, 며칠 동안 식구들이 돌아가며 불침번을 서기도 했어요. 이럴 때는 정말 동물들이 원수같이 느껴져요. 만나면 두들겨 패줄 생각도 해요. 그런데 막상 찻길에서 차를 피해 우왕좌왕하는 고라니를 마주치면 안쓰럽다는 생각이 먼저 들어요. 그 녀석들이 충분히 길을 익히기에는 너무 빨리 변하는 것이 인간들이 만든 세상이니까요. 오늘 가져온 서와 시인의 시는, 처음 읽으면 피식하고 웃음이 나는 귀여운 시예요. 그런데 시를 더듬어갈수록, 생각이 많아지는 시이기도 해요. 결국 제가 농사짓는다고 땅을 파고, 뒤집고, 모종을 심어두는 땅은 두더지의 집이고, 지렁이가 지나는 길이니까요. 그래도 농사는 지어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그러다 우연히 아랫마을 장대 할머니에게 '까치밥' 이야기를 들었어요. 장대 할머니는 배고픈 산새들을 위해서, 수확기 때 잘 익은 열매 몇 개를 남겨 두었대요. 산새들은 열매마다 부리로 콕콕 구멍을 뚫어놓는 골칫덩이지만, 그래도 산새가 떠나가지 않고, 함께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서요. 골치는 아파도, 함께 살자고 열매를 내어주는 것. 여전히 초보 농부인 저에게는 너무도 큰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도 그렇게 할 수 있을까요? 올 한 해는 저에게도 장대 할머니 같은 마음이 있으면 좋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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