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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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농사를 지으며 든 생각을 글과 노래로 만든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가끔 공연 하러 방방곡곡 다닌다. |
조개껍데기 최종득
바닷가 모래톱 자디잘게 부서진 조개껍데기
오랜 세월 파도에 시달려 제 모습을 잃었다.
그래도 제 빛깔은 그대로다. |
비가 오지 않는 어느 봄날, 감자밭에 물을 주고 있는데 우연히 냉이를 발견했어요. 반가운 마음이 들어, 냉이에도 슬그머니 물을 주었어요. 한 번 물을 주니까, 밭에 가면 감자보다 냉이를 먼저 찾아요. 키는 얼마나 자랐는지, 너무 비가 안 와서 잎이 마르지는 않는지·······. 잘 자라준 냉이로 전을 부쳐 먹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어요. ‘있다는 걸 아는 것만으로도 돌보게 되는구나.’하는 생각이요. 무언가를 소중하게 여긴다는 것은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걸 알았어요. 어떤 선생님에게 들은 말이 있어요. 마음이 복잡하고, 답답하고, 돌덩이가 앉은 듯 무거울 때, 그럴 때는 하던 걸 멈추고 잠깐 나를 들여다보라고요. 그리고 나에게 말을 걸라고요. 소리 내서요. “지금 어떤 마음이니?” 나에게 말을 거는 건 왠지 쑥스럽고 낯간지럽기도 해요, 하지만 꼭 필요한 일이라고 했어요. 그 말을 하는 선생님 얼굴이 아직 기억나요. 아주 단호하면서도 진심 어린 모습이요. 그 뒤로 저는 마음이 흐린 날이면, 스스로에게 물어요. “지금 어떤 마음이니?” 시원하게 대답이 나오는 날도 있고, 도통 나오지 않는 날도 있어요. 그래도 괜찮아요. 내 안에 이런 마음이 있다는 걸 알게 됐으니까요.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해요. 시에 나오는 조개껍데기처럼,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상처를 받고, 어려움을 겪어요. 구겨지기도 하고, 닳아버리거나 부서지기도 해요. 어려운 일이지만, 우리가 그 상처를 외면하거나 묻어두지 않고 들여다보기를 바라요. 무엇이 얼마나 나를 상처 나게 했는지요. 이 마음이 여기에 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면, 조금씩 그 마음을 가꾸게 돼요. 잘 가꾸어진 마음은, 잘 닦인 조개껍데기처럼 조금씩 제 빛깔을 찾아가지요. 저는 요즘 봄을 기다리며, 얼어있던 몸을 조금씩 깨우고 있어요. 밖은 여전히 새하얗게 바랜 겨울이지만, 얼마 안 가 새순이 피고 연둣빛 봄이 올 거예요. 제 빛깔을 찾아가는 거지요. 그 일은 아주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일어나는 일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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