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5-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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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연 농사를 지으며 든 생각을 글과 노래로 만든다.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기타를 가르치고, 가끔 공연 하러 방방곡곡 다닌다. |
눈 위에 쓰는 시
류시화
누구는 종이 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 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 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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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좋은 소식 들으면, 하루 내내 기분이 좋아요. 보고 싶은 친구가 놀러 온다거나, 알맞은 비가 내릴 거라거나. 그런 소식이요. 반대로 슬픈 소식을 들으면 하루 내내 마음이 무거워요. 친구가 오래 준비한 시험에서 떨어졌다거나, 자주 가던 밥집이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요. 살다 보면 꼭 좋은 소식만 들리는 건 아니죠. 슬픈 소식도, 쓸쓸한 소식도, 외로운 소식도 들려와요. 그럴 때면 저는 움츠러든 마음을 붙잡고 글을 써요. 그 마음을 글에 담고 나면 마음이 푸르르 풀리기 시작하거든요. 류시화 시인은 어떤 마음으로 저 시를 썼을까요? 어떤 마음이었기에 ‘흔적도 없이 사라질 시’를 쓴 것일까요? 때로는 알 수 없는 마음이 저를 찾아와요. 슬픈 건지, 외로운 건지. 뭐라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그렇지만 저를 흔들어 놓는 마음이요. 그런 마음은 감기 같아서, 글을 써도 풀리지 않고, 며칠을 제 곁에 머물다 가는 마음이에요. 그날에 쓴 글들은 나중에 보아도 알쏭달쏭한 경우가 많지요. 시인도 그런 마음이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봐요. 한 해 농사를 삶에 빗대어 이야기하곤 하잖아요. 인생도 씨를 뿌리는 시기, 작물을 가꾸는 시기, 결실을 수확하는 시기, 빈 밭에서 쉬어가는 시기가 있다고요. 겨울은 쉬어가는 시기에요. 겨울에는 아무리 열심히 씨를 심어도, 싹이 움트지 않아요. 다시 싹을 틔우려면 봄을 기다려야 해요. 어제는 밭에 나가서 겨울을 나고 있는 양파와 마늘을 살폈어요. 겨울에 양파와 마늘은 잔뜩 쪼그라든 채로 봄을 기다려요. 더 이상 키도 자라지 않고요. 죽은 듯이 보이지만 봄이 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힘껏 기지개를 켜요. 농사를 지은 십일 년 동안, 양파 수확을 못 한 해는 없었어요. 그 사실이 위로돼요. 양파도 나와 함께 봄을 기다린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시인처럼 긴 겨울을 맞은 이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요. 함께 봄을 기다리자고요. 추운 겨울이지만, 하루하루 살아가다 보면 어느새 눈이 녹고 새순이 피어나는 순간이 올 거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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