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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24-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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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서정홍 시인

소개- 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천생연분

서정홍

 

 

여름 한낮에

아내가 고추를 따면서 말했다.

 

여보, 우리 옛날처럼

농사짓는 사람하지 말고

돈 주고 사 먹는 사람하모 좋겠소.”

 

때마침, 나도 그 말을 하고 싶었는데

차마 하지 못하고

뚱딴지같은 소리만 뱉고 말았다.

 

아니, 당신 말대로

모두 돈 주고 사 먹는 사람 하모

누가 농사짓겠소.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아내는

늘 솔직하게 말하고

나는

늘 말만 번지르르하게 늘어놓고

우리는 천생연분에 보리개떡이라.

 200522, 국가에서 농부로 인정하는 농지원부가 나오던 날! 그날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뜻깊은 날이었다. 이웃을 모르고 사는 게 더 편한 도시에서 약삭빠르게 자리 지키며 살다가 뒤늦게나마 마흔 중턱에 산골 농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기뻤겠는가. 흙에서 태어나, 흙에서 난 걸 먹고 살다가, 흙이 될 수 있으니 얼마나 마음 설렜겠는가.

그날, 그 기쁨과 설렘을 잊지 않으려고 이 글을 쓴다. 20년 남짓 농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걱정해 준 사람들을 가만히 떠올려 본다. 한 식구처럼 살 수 있는 작은 산골 마을에 빈집과 논밭을 알아봐 준 정상평 농부님, 작은 흙집을 짓다가 건축 자재 값이 없어 허덕일 때마다 아무런 조건 없이 기꺼이 힘을 보태 준 사람들, 때때로 새참을 손수 만들어 주신 마을 할머니들, 여섯 달 넘도록 돈 한 푼 받지 않고 흙집을 같이 지어 준 김성환 선생, 농사지으려면 거름이 필요하다며 밤 10시가 넘어서 큰 트럭에 소거름을 싣고 찾아온 강기갑 선배, 독한 농약과 화학비료에 병든 땅을 살리는 생명농업을 해 보겠다고 큰소리치다가 벌레 먹고 볼품없는 농산물을 거두었는데도 아무 말 없이 사 준 사람들, 감자든 양파든 농산물을 받을 때마다 농사짓느라 애썼다고 택배비에 식구들 밥값까지 얹어서 돈을 부쳐 주는 사람, 한 달 뒤에 농산물을 거둘 것이라는 문자를 보내고 나면 마치 자기 일처럼 여기저기 주문을 받아 주는 사람, 코로나19로 온 지구촌이 불안하고 어려운 때 영농조합법인 공장을 지을 터를 사 주고 건축비를 후원해 준 사람들, ‘오래된 미래인 농부를 아껴 주는 그 사람들이 있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어찌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있으랴. 이 자리를 빌려 온 마음을 다해 머리 숙여 인사드린다.

(그동안 보잘것없는 산골 농부가 쓴 글을 읽어 주신 황강신문 독자님들께도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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