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3-11-06
물어보자, 내게
공부는 왜 하는지
친구는 왜 만나는지
대학은 왜 가려는지
내가 무얼 좋아하는지
내가 무얼 잘하는지
엄마가 차려 주는 밥 먹고
학교로
학원으로
집으로
다시 학교로
학원으로 돌아다니며
한 번도 내게 물어보지 않았다.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는지
물어보자, 내게!
이웃 마을에 사는 준우는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착하기로 소문난 아이였어요. 어릴 때부터 피아노 학원, 영어 학원, 논술 학원, 태권도 도장, 바둑에 서예까지 어머니가 하라는 일이라면 군소리 없이 따랐어요. 그렇게 자라 어느새 중학교 2학년이 되었어요.
어느 날 아침, 어머니가 등을 툭 치면서 말했대요. “준우야, 학교 갔다가 딴 짓하지 말고 바로 학원에 갔다 와.” 다른 날 같았으면 그냥 “예, 어머니.” 하고는 학교로 갔을 텐데, 자기도 모르게 어머니 손을 꽉 잡으며 말했대요. “어머니, 이제 그만하세요. 저도 생각이 있다고요.”
준우는 그날부터 자기도 모르게 빗나가기 시작했대요. 어머니가 말하는 ‘나쁜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집에도 들어오지 않고 학교 결석을 밥 먹듯이 하고 돌아다녔대요. 나는 준우가 퇴학을 당하고 나서야 준우 속마음을 듣게 되었어요.
지금은 검정고시에 합격하여 농업대학에 들어가려고 스스로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있어요. 준우는 나라 곳곳에 병든 나무를 치료해 주는 ‘나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해요. 그리고 벌(양봉)을 기르고 싶어 책을 사서 공부도 하고, 양봉 농가에 찾아가서 배우기도 해요.
아직도 자식을 자기 욕심을 채워 주는 도구로 여기는 부모도 있어요. 더구나 학생들을 끊임없이 경쟁에 몰아넣으면서 달마다 월급을 챙겨 가는 선생도 있어요. 그들은 입만 열면 어떤 일이든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해요. 어떤 일이든 왜 최선을 다해야만 할까요? 힘들면 쉬엄쉬엄 쉬었다 가면 안 될까요? 그들은 공부를 못하거나 경쟁에서 지면 사람대접을 받을 수 없다며 윽박질러요. 사람은 저마다 좋아하는 일이 있고, 잘 하는 일이 따로 있는 줄 알면서도 말이에요.
‘나답게’ 살아가려면, 가장 먼저 나한테 물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어른들이 말하는 성공이나 출세로 가는 길이 아니라, 내가 가고 싶은 길이 어딘지 가만가만 물어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글쓴이 서정홍 시인
약력:가난해도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글을 써야 세상이 참되게 바뀐다는 것을 가르쳐 준 스승을 만나,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여러 시집과 산문집을 펴냈다. 전태일문학상, 우리나라좋은동시문학상, 서덕출문학상, 윤봉길농민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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