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5-10-06
고대(古代) 중국의 삼황오제(三皇五帝)부터 하(夏)·은(殷)·주(周)시대의 학문을 춘추시대(春秋時代) 공자께서 연구해 구경(九經)을 집주하고 편찬해 도덕종교로서 기틀을 마련하고 제자인 증자(曾子본명曾三)께서 공자의 예기(禮記)를 탐독해 대학(大學)을 편찬하고,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본명 공급 孔伋)이 중용(中庸)을 편찬했으며, 증자(曾子)와 제자들이 강론을 받을 때 질문과 답변 등을 논의(論議)해 논어(論語)를 편찬했는데 曾子의 부친 증점(曾點)의 유언에 따라 많은 돈을 부담해 편찬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孔子 타계한지 150여년 뒤 전국시대(戰國時代)에 맹자(孟子)라는 큰 학자가 공자의 도덕종교를 크게 발전시켜 《孟子》라는 책을 편찬해 그 학통을 공맹사상(孔孟思想)이라고 한다.
南宋시절 朱子는 유교의 사서오경(四書五經)을 공부하다 이 동을 만나 성리학을 연구하게 되었으며 관리로 있으면서 많은 학자들과 교류해 자기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자기의 학문을 자랑하지도 않고 겸손하고 관리(官吏)로서 책임을 다했으니 항상 백성들의 추앙 받으면서 일했다고 한다.
北宋의 성리학자 학문을 깊이 연구하여 성리학(性理學)을 집주했다. 특히 주돈이 太極論과 정이의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을 많이 연구했다.
동양의 많은 學者 중에서도 가장 많은 서적을 편찬했으며 학문의 질(質)이 우수하며 치양지(致良知:양질의 지식을 이루어야 한다)를 중요시했으며 격물치지(格物致知=大學의 8조목 중 첫 번째)를 수 없이 논의하고 토론해 정립했다. 수신(修身)은 양질의 마음(良心)을 잘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오래 강론(講論)했다고 한다.
그동안 성리학의 형성과 핵심 연구라는 주제로 첫 번째 내용을 정리해보았다.
주돈이(周敦頤), 장재(張載), 소옹(邵雍), 정호(程顥), 정이(程頤) 등 북송시대 다섯 명의 성리학자들이 성리학의 새로운 이념 체계 정립에 기여했고 이를 집대성해 이론체계를 정립한 학자는 남송시대의 주희(朱熹, 朱子)였다.
그동안 유학의 발전과정을 시기별로 살펴보며 주요 역사 인물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는데, 그 태동이 중국에서 시작되어 중국 학자들을 중심으로 다뤘으며, 다음 회부터는 국내의 유학자 중 퇴계 이 황 선생을 중심으로 이야기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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