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5-11-24
합천지역의 우편집배원은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어떤 생각으로 사는지 궁금해 11월 11일(수) 오후, 삼가집배센터 김봉재 팀장을 만났다. 우편집배원을 줄이기만 하는 정책이 지역복지의 사각지대를 메워왔던 이들의 긍지도 흔들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래는 그와 나눈 얘기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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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주민이 많았으면 좋겠다”
김봉재, “우편집배원을 줄이는 정책 탓에 지역민과 어울리기 어려운 풍토, 안타깝다” ©임임분 |
자기소개를 해달라.
1970년 삼가면 일부리에서 나고 자랐다. 진주우체국으로 입사했으나 1993년에 울산으로 발령받아 집배 일을 처음 했고 부모님이 연로해서 합천으로 돌아온 지는 3년 됐다. 아내도 울산에서 하던 일이 있어 1년 넘게 주말부부로 있다가 지금은 아내와 아이들도 합천으로 와서 가족이 함께 지낸다. 집은 합천읍이라 삼가집배센터로 출퇴근한다.
우편집배원으로 일하게 된 계기는?
아버지의 권유가 있었다. 학생 때 육상을 해서 사람들과 친화력 좋은 성격이 집배 일이 잘 맞겠다고 보시고, 집안 어른 가운데 집배 일을 하는 분도 있어 권하셨다.
하루, 일주일을 어떻게 보내는지 시간 단위로 얘기해준다면?
아침에 테니스 실력을 올리기 위한 교습을 받고 있어서 5시 30분에 일어나 6시부터 교습 한 시간 받고 7시 30분에 합천읍에서 삼가로 출발한다. 8시 전에 출근해서 그 날치 배달할 우편물 구분 작업을 한다. 토요택배업무를 하는 날 빼고는 주말엔 주중에 못한 일을 본다. 토요업무가 없을 때는 가까운 곳으로 가족여행도 갔는데 요즘은 그러지 못한다. 비수기 때는 우편물 구분작업이 오래 걸리지 않으니 10시쯤이면 배달을 시작하는데 성수기 때는 점심시간을 넘겨 배달에 나선다. 보통 18시까지 배달을 하는데, 요즘처럼 빨리 어두워질 때는 물량이 많으면 그 날치 배달을 다 못하기도 한다. 그럴 때는 급한 우편물 먼저 처리하고 다음날로 미루기도 한다. 18시 30분이나 19시가 되면 퇴근한다.
지난해 7월 토요일 우편택배업무 안하다가 올 9월에 다시 하게 되고 시간제우체국 운영, 민영화 압박 등 우편업무도 시대 흐름에 따라 바뀌고 있다.
우편물량은 줄었는데 세대 수가 늘어 집배 일을 하는 입장에서 보면 업무부담에 큰 변화는 없다고 본다. 도시와 달리 농촌은 배달인력이 줄어 물량은 줄어도 이동해야 하는 거리는 여전하고 세대 수도 늘어 배달시간은 늘었다. 1개 면에 한 사람이 토요택배업무를 한다. 처음 본부에서 우리한테 토요업무하자고 하면서, 휴일수당도 주고 휴일근무도 주겠다고 위험수당도 2만원 추가로 준다고 했는데 그 약속은 어디 갔는지 없고 시간외수당 4~5시간 주는 식으로 됐다. 주5일근무제가 파기됐다. 신규자 견습시킨다고 토요일에 2명이 나갔는데, 그 일로 지적이 들어왔다. 업무시간에 일 다 하고 남는 시간에 따로 견습시키라는 얘기다. 한 달에 두 번꼴로 토요업무를 하는 셈이다. 토요일엔 택배만 배달하고 아직 물량은 많지는 않은데, 본부에서 현대홈쇼핑과 협약을 맺어 일정 물량을 넘겨받고 있어 평가가 좋으면 앞으로 더 늘어날 듯 하다. 일요일은 고단해서 거의 집에 있게 된다. 토요근무하기 전에는 토요일에 가족과 외출하고 일요일에 쉬는데, 지금은 밀린 일 처리하느라 가족과 외출하기 어려워졌다.
그 날치 우편물 배달을 다 못하게 되는 상황은, 집배 인원을 줄여서 일어난 일이다. 삼가집배센터만 해도 집배원 한 명이 다리 수술을 해야 해서 인력이 하나 줄었는데, 그 준 인력을 보충 받지 못하고 있는 인원이 그 업무까지 나눠하게 되니 업무 부담이 더 늘었다. 8명이 하던 일을 6명이 하던 구조에서 한 명이 빠지니 근무조건이 매우 나쁘다.
도시와 합천 같은 농촌의 집배환경은 다르다. 도시는 집단거주지나 집단사무공간처럼, 집배원의 이동거리 대비 우편물량이 농촌과 다르다. 농촌은 각 수신처별 이동거리가 도시와 확연히 다르다. 그 다른 환경을 우정사업본부에 얘기해도 반영되지 않으니, 고충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
우정노동조합에서 토요택배업무를 합의해주었으니 지키지 않는 합의안, 현장의 어려움에 대해 재협상할 수도 있지 않나?
본조에서 움직여야 하는데, 움직이지 않는다. 도리어 본부에서 노동조합을 압박하는 눈치고. 생각하면 천불이 나지만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참고 있다. 최근에 소방관들 업무 관련 사망자 수가 35명인가 된다던데, 우편집배원의 업무상 사망자도 26명이나 된다. 업무과중과 연결된 수치인데 우정사업본부는 쉬쉬한다. 집배 적자 운영만 내세우고 그 부담을 우리한테 떠넘긴다. 우리 탓이 아니다. 관리자의 경영능력과 관리능력 탓인데, 집배원 어려움은 눈 감고 지들은 승진잔치 벌이니 집배원의 사기도 많이 떨어져있다. 나도 요즘 21년째 하는 이 일에 대해 회의, 환멸을 느끼고 있다. 엄마가 공부하라 할 때 공부 더 했으면, 하는 생각까지 한다. 월급 받고 하는 일이지만, 지역민에게 봉사를 하는 일이기도 해서 나름 자부심도 느끼고 보람도 느끼던 일인데.
일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나 어려운 일이 있다면?
수신처 주소와 수신자 이름을 정확하게 써주면 좋겠다. 사망자 정리가 되지 않아 우편물이 더러 오는데, 그렇게 되면 수신자 찾기 어려워 업무 비효율이 커진다. 독거노인이 많은 시골에 가끔 있는 일인데, 우편함에 우편물이 쌓여있어 집안을 들여다보면 사망자를 보게 되어 신고를 하게 된다. 이런 일은 집배 인력이 줄면 못하게 되는 일이다. 일에 치이면 마음이 있어도 못하는 일이다. 집배 일 외에 산불명예감시도 하고 있고 아동보호요원도 맡고 있다. 정부에서 우리 업무의 특성을 지역복지에 활용할 수 있는 길을, 현장 중심으로 고민해주기 바란다. 현장 인원을 줄이고 책상 인원을 보호하는 방침은 걱정스럽다.
여름에 오토바이 타고 배달하다보면 대문 없는 집 마당에서 할머니들이 등목하다가 보고 “자식 같아서 그냥 씻는다”면서 스스럼없이 얘기하는 모습 보면 내가 시골에 와 있구나 싶기도 하고, 등기로 온 우편물인데 수취인은 없고, 약이 든 우편물 같아서 보낸 사람한테 전화를 해서, 어떻게 할까 하고 물어보니까 사위라는 사람이 그냥 우편함에 넣어놓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는데, 며칠 뒤 만난 수취인 할머니가, 그 봉투에 돈 이십만원이 들어있었다고, 니가 가져갔으니 내놓으라고 해서 옥신각신 싸운 일도 있다. 일은 바쁜데 노인들이 집배원 잡고 커피 마시라, 하면 고맙기는 하지만 요즘은 맘 편히 그러지 못할 때 고향에서 일하고 있으니 더 미안하고 지친다.
도로명주소, 새 우편번호 시행은 정부가 비슷한 사업을 한 번에 하지 않은 일 관련 효율이 떨어진 일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도로명주소, 새 우편번호 시행, 쓸데없는 짓이다. 도시는 시골에 비해 주소오기가 적고 번지 위주로 배달을 하게 되고 잘못 배달된 우편물은 수취인불명으로 반송하면 뒤탈이 적은데, 시골은 주소오기가 심하거나 정확한 주소가 없어 배달하기 어려운 우편물도 집배원이 어지간한 우편물은 다 찾아 배달하는데도, 번지 없이 마을이름만 있는 우편물 탓에 끝내 배달이 안되면 “뒷집, 옆집에는 청첩장이 왔다는데 우리 집에는 왜 안왔냐”고 민원이 들어온다. 잘하는 일, 도움 받은 일은 민원으로 칭찬해주지 않는 분위기가 시골에 있다. 이런 현장의 어려움은 무시하고 관리자들은 지역이동을 감안한 집배원의 다른 지역 배달지 습득을 3주만에 해내라고 강조한다.
지역의 사회단체활동을 하기도 하는가?
마흔 넘어 고향에 돌아왔더니 나이 많다고 청년회니 뭐니 단체에 잘 끼워주지 않더라. 학생 때 운동을 했던 이들의 모임인 <합천체육인동우회> 활동을 하고 있다. 회원 30여명이 매년 연회비로 학교 체육을 하는데 형편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준다. 20대 회원부터 50대 회원까지 있다. 삼가초동창회는 울산에 있을 때부터 열심히 참석한다. 아내도 삼가초 동창이다. 아내가 중학교 동기, 첫사랑이다.
누군가 ‘행복한가?’라고 묻는다면?
모르겠다. 토요근무하기 전까지만 해도 누가 물으면 과감하게 ‘재미있다’라고 했는데, 지금은 몸 힘들고 마음은 더 힘들다. 집배 일을 얼마나 더 할지 모르겠지만, 토요근무를 앞으로 쭉 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이 쭉 빠지고. 다른 일을 하는 친구나 사람이 “니, 토요일에도 일하나?”라고 물으면 할 말도 없고.
목표, 꿈이 있다면?
집배 일을 해서 그런지, 물류시스템에 관심이 많다. 물류관리사 자격증을 따서 더 전문적인 물류 일을 해보고 싶다.
지역사회에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면
글 모르는 노인들한테 오는 우편물, 전화요금고지서, 전기요금고지서는 누구한테 왔고 얼마 나왔고 언제까지 납부해야 한다고 하나 하나 살펴주다 보면 내가 도움이 되는구나, 보람도 느끼고 좋았는데, 일이 밀리고 고단하면 나도 사람이라, 그런 일을 피하게 될 테고, 지역출신이라 다 아는 얼굴인데 예전과 달라졌다고 욕 먹게 될 되면 나는 또 자괴감을 느끼게 될 일이 편치 않다. 어릴 때만 해도 집배원이라고 하면 반가움의 대상인데 지금은 각종 나쁜 우편물(채권독촉, 요금 고지서 등) 탓에 공포의 대상이 됐다. 그럼에도 따뜻한 말 한마디, 자주 해주는 주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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