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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6-01-26

허상근(가회면)

 

오래 전 읽은 윤흥길의 완장이라는 소설에서 47만평의 널금저수지관리인 임종술이 완장을 차고 나타나 먼저 정착해 살고 있던 마을의 주민들과 저수지를 찾는 낚시꾼은 물론 낚시터를 운영하는 대표까지 꼬투리를 잡아 괴롭힌다. 사람들은 그에게 꼬투리 잡히지 않으려고 의도적으로 슬슬 피하게 되고, 그런 모습을 은근히 즐기는 임종술의 기세는 더욱 등등해져 심술과 행패까지 부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완장의 힘을 남용하기에 이른다.

임종술은 서울의 동대문 시장에서 포장마차를 하기도 했으며, 암시장에서 미제 물건을 팔기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와, 빈둥거리며 밤중에 도둑고기를 잡는 등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생활을 하던 중 신남화물 최 사장이 저수지를 양어장으로 사용하게 되고 평소 골치 덩어리로 여기던 임종술을 관리인으로 임명하므로, 그때부터 그는 완장을 차고 부여받은 소임을 훨씬 능가하는 자기 나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에서 완장의 폐해를 뼈저리게 실감한 그의 어머니 운암댁의 염려와 탄식을 뒤로 한 채 안하무인으로 마을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고 임종술은 발악을 하게 되는데, 객지로 떠돌아다니며 힘겹게 살아온 인생에서 저수지 관리인의 완장은 국회의원의 금배지와 버금가는 현실을 즐기게 되는 특권이었으며, 하릴없이 세월만 갉아 먹던 그의 인생 일대에서 최고의 전성기가 된다.

임종술은 그 무딘 권력의 칼로 밤중에 몰래 물고기를 잡던 초등학교 친구 준환이를 폭행하고 친구 아들의 고막을 터지게 하는 등 도의도 윤리도 무시하며 절대 권력자와 같은 모습으로까지 치닫는다. 저수지로 나들이 나온 자신의 주인인 최 사장 일행에게까지 <공유수면관리법>을 내세우며 행패를 부리다 결국 관리인 자리를 빼앗기지만 완장이 주는 으스댐을 즐겨오던 임종술은 완장을 빼앗기고도 저수지를 관리하는 일에 여념이 없는 시간을 보낸다.

그러던 중 가뭄이 심해지자 해소대책으로 타들어 가는 전답을 적시기 위해 저수지의 물을 빼야 된다는 수리조합 직원과 경찰에게까지 행패를 부리게 되고, 임종술은 결국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자, 평소 완장의 허황됨을 일깨워주던 선술집 작부 부월이와 마을을 떠나게 된다. 다음날 저수지 수면 위에 임종술의 팔뚝을 지키고 있던 힘의 상징이었던 비닐완장이 떠다니다 수문의 그물망에 걸려 맴도는 것으로 소설은 끝이 난다.

요즈음 나의 고향 마을에서는 완장차기를 갈망하는 임종술과 같은 몇몇 똠방들이 손을 담가야 할 곳인지, 발을 담가야 할 곳인지도 모르고 깨끗하게 담겨져 있던 물을 더럽히고 있다는 소식이 많은 사람들의 입방아거리다. 마을의 이장자리를 놓고 서로 비방하며 편 가르기를 하고, 심지어는 그 감정으로 고향 선후배끼리 주먹다짐을 하는 등 그 꼴불견이 극에 달하고 있으며, 자기의 능력이나 소신은 접어두고 하찮은 감투라도 일단 얻고 보자, 그래서 그 얇디얇은 권력으로 여기저기 무슨 일에든 참견하고,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자 완장획득 육탄전에 힘을 쏟고 있음은 씁쓰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난타전에 참가한 자들과 그들을 부추겨 분란을 만드는 자들에게만 국한되는 얘기지만 말이다

 

완장은 권력을 내재하고 있는 힘의 상징이 아니라 아주 작은 재량을 부여 받는 보잘 것 없는 일이다. 재량을 평소 염원하던 권력으로 착각을 하지 않는 현명한 완장정신이 이 각박하고 어수선한 세상에서는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완장은 권력을 즐기며 자신의 위치를 보장받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흐트러졌거나 흐트러질 개연성이 있는 공공의 질서를 바로잡는 데 길잡이 역할을 하는 상징 이상도 이하도 아님을 알아야할 것이다. 이미 완장을 두른 자들과 완장 차기를 희망하는 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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