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6-06-14
동으로 갈마산, 서로 의룡산, 북으로 망월산이 있으며, 서쪽에서 유유히 흐르는 황강을 끼고 갈마산이 날개짓하는 끝자락에 1500년경 고령 박씨 17대조 박관공이 현 손목2구에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손목2구마을은 서쪽에서 흐르는 황강천과 남쪽에서 흐르는 황계천, 즉 이수와 사수가 만나는 지역에 소가 형성되어 고기가 많아 ‘조동’이라고도 불렸다. 6월 7일(화) 오후, 손목2구마을회관에서 박성식 이장을 만났다. 아래는 그와 나눈 얘기다.-임임분 기자
자기소개를 해달라.
1954년 손목2구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외지에 나가지 않고 쭉 고향에 살고 있다. 부모님도 농사를 지었지만 물려받은 자산 없이 오로지 내 힘으로 기반을 잡았다. 현재 소 50마리를 키우면서 쌀·마늘·양파 농사도 짓는다. 손목2구마을에서 아내, 축협에 다니는 아들과 셋이 산다. 다른 자녀들은 결혼 다 해서 외지에 산다.
이장 경력은 얼마나 되는가?
7년차 됐다.
사회단체 활동도 하고 있는가?
용주면 <의룡정>에서 궁도하는데 모임 대표인 사두도 맡고 있다.
손목2구마을 주민 현황은?
34가구에 72명이 살고 있다. 최연소 주민은 초등학교 3학년생, 최고령 주민은 92세 어르신이다. 주력층은 70대이고 주민의 30%가 생계활동을 하고 있다. 생계활동하는 주민 다수는 쌀농사를 짓는다.
손목2구마을 현안은?
7년에 걸쳐 10만평 국유지(농지)를 주민 소유로 바꾸는 사업을 하고 있는데, 올해로 5년째 하고 있고 마무리 단계다. 지난해 마을주민들이 합창단을 했고 한동안 양파즙 만드는 마을기업도 했는데 지금은 주민들이 다른 일로 바빠서 못하고 있다.
귀농·귀촌인 사례는?
한 가구 있었는데 살기 힘들다고 다시 떠났다.
평생 농사 지으며 살고 있다. 농촌에서 농부로 사는 일, 괜찮은가?
불만 없다. 내 힘으로 여기까지 왔다. 지만 부지런하면 얼마든지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요즘은 소값 좋고 마늘·양파값도 나쁘지 않고 쌀·밭농사 직불제 꼬박꼬박 나오지. 농사 지으면서 살기 어렵다고 불평불만하는 사람들, 나는 이해 안된다. 쌀값이 개사료값만도 못하다고 정부 탓 하는데, 웃기는 얘기다. 다 지가 게을러서 그렇다. 농번기, 1년에 한 두 달이다. 도시사람들 1년 꼬박 일하는 조건에 비하면 농촌 사람들, 솔직히 호강이다.
자녀한테 농사 물려줄 생각도 하는가?
안한다. 지(축협 다니는 아들)가 할 생각도 하지 않고 나도 물려줄 생각 안한다.
저출산 심화, 고령화 가속으로 합천의 앞날을 걱정하는 이가 많다.
인구, 줄어도 할 수 없고 불어도 할 수 없다. 살기 좋으면 오라 하지 않아도 온다고 생각한다. 나는 걱정하지 않는다.
이장 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 어려운 일, 주민이나 지역사회에 당부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주민 협조가 좋아 어려운 일 없다. 이장이 하자는 대로 따라준다. 우리 마을 주민들은 쓰레기분리배출도 잘한다. 면사무소나 군청, 농협에도 별다른 불만 없다. 요청하면 다 해결해주니까.
임기에 꼭 하고 싶은 일은?
이번 임기, 내년까지인데, 내 일이 바빠서 더 못하겠다고 생각은 한다. 그럼에도 마을을 생각하면, 고령주민들이 많고 그들을 위해 해야 할 일, 민원은 여전히 있으니까, 그때그때 사안을 해결할 생각이다. 농로포장 안된 곳도 있어서 할 일은 있다.
지역정치인의 활동에 만족하는가?
잘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나서 일해도 할 소리 안할 소리 듣기 마련이다. 나 또한 지역에서 살면서 이런저런 단체 활동 경험, 할 만큼 해서 안다. 어디나 한 두 사람, 듣기 싫은 소리 하기 마련이고, 누구를 앞에 세워놓아도 할 일은 한다고 생각한다. 난 앞에 나서 일하는 사람, 칭찬하려고 하지 ‘못한다, 제대로 해라’는 등 나무라는 얘기는 안한다.
여가에는 무엇을 하는가?
궁도 하고, 사람 만나 어울리는 일 외에는 없다.
지역언론에 대한 평소 생각, 조언이 있다면?
이장 맡고 있으니 집에 이런저런 신문이 7~8부씩 오는데, 비닐포장도 뜯어보지도 않고 내다버린다. 보겠다고 하지 않았는데 보내는 신문, 반갑지 않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