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6-09-27
2015년 11월 14일, 서울 종로 민중총궐기장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쓰러져 생사를 헤매던 전남 보성군의 백남기 농민이 투병 317일 만인 9월 25일(일) 14시 15분에 별세했다.
이미 한 달 전부터 가족과 백남기농민대책위는 백남기 농민의 위중함을 걱정해왔고 그가 살아있을 때, 진상규명을 위한 국회 청문회를 하자고 온 힘을 다해 싸워 9월 12일(월)에 청문회를 했다. 여소야대라고 기대했던 20대 국회는 우는 아이에게 곶감 던져주듯 강신명 전 경찰청 청장을 청문회장에 불러냈지만, 물대포를 직접 살수했다는 젊은 경찰 둘을, 그들의 안전을 위해 가림막을 쳐주는 인권은 보장하면서 살인혐의로 재판 중이라며 끝내 청문회장에서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하지 않는 강신명 전 청장 등 책임자들의 민낯을 12시간 남짓한 시간 생중계로 보게 했을 뿐이다.
합천군민이자 합천의 지역신문 기자로 이 청문회를 지켜보는 심사는, 아무래도 합천 출신 강신명 전 청장, 합천 출신 윤해옥 국회의원의 발언과 표정이었다. 이들을 자랑스러운 합천향우로 부르는 이들 가운데 누구 하나라도 이 청문회를 봤다면, 윤해옥 의원이 강신명 증인을 감싸듯, 감싸기만 하겠지, 내 아버지나 내 형님이 백남기 농민일 수도 있었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도 그 가운데 하나는 있을까, 그러면 다행이겠다 싶었다.
9월 24일(토), 백남기 농민이 위중하다니 검찰이 경찰 동원해 시신 부검 대비 중이라는 전갈이 날아왔고, 9월 25일(일) 14시 15분, 백남기 농민 사망했다. 대책위가 11월 12일 민중총궐기까지 장례투쟁에 나선다고 하니 지난날도 생각난다. 비정규노동운동단체 기관지 기자, 노동조합 상근자를 하면서 노동계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의 여러 열사투쟁을 가까이에서, 또는 조금 떨어져서 봤다. 이젠 이 외지고 한적한 합천에서, 아버지 연배의 농민이 열사투쟁의 주인공이 되는 일을 본다.
‘장례투쟁, 열사투쟁’, 여전히 나는 이런 말을 쓰게 되는 나라에 산다. 합천에 사는 일이 짜증나고 창피하고 미안했던 9월 12일 청문회, 가족을 잃었는데 그 시신을 지키지 못할까 괴롭고 힘들었을 백남기 농민 유족, 특히 지난달 여성농민대회장 무대에 올라 “아버지를 사경에 몰아넣은 책임자를 감옥에 보내는 일에 함께 해달라”고 울먹이는 엄마(둘째딸 백민주화씨) 곁을 지키다 집회 참가자들에게 서툰 한국말로 “고맙습니다”라고 한 마디 남기던, 백남기 농민의 어린 손자가 생각나는 오늘이다. 백남기 농민의 명복을 빕니다.
임임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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