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6-06-07
어르신 경로우대 10%
시설이 허름한 골목 목욕탕
반갑습니다
어서오이소
중년 아지매 친절 만점이다
매주 목요일은 때 빼고 광내는 날
지난 날 한창시절 치밀한 계획 세워
목표치 초과달성 푸짐한 격려금으로
주거니 받거니 맥주잔이 돌아가고
화기애애 회식자리 채식주의자 입안에선
과일만 챙겨도 풍요하다
어느새 둥근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늙은 포수, 사냥개도, 화살도 떨어지고 매도 잃고
꿩도 잃은 털털이 구름 나그네
늘그막에 즐겨 찾는 곳, 목욕탕 이발관에 들러
잔머리 손질하며 시간을 달래는 이 순간
이 일보다 더 좋은 안식처 또 어디 있는가
이 날도 땀내 짙은 상하의 속옷
훌훌 던져버린 몸뚱아리
바둑이도 외면해버릴
초라하고 흉물스런 몰골이 스스로도 고개를 돌릴 수 밖에
피부도 탄탄하고 아랫배도 안 나오고
체력관리 잘한 또래의 늙은이
명품 모자가 제격에 어울린다
선생님 그 모자가 눈에 탁 들어오네요
국제시장 케네디깡통골목에서 어렵게 구했다나?
문제가 생겼다
막 목욕을 끝내고 탈의실로 나오는 순간
탈의실 욕객들의 심상치 않은 싸늘한 시선들이
내게로 집중포화가 쏟아지고 있지 않은가
여보, 영감 ! 내모자 내 놓으소!
아까부터 탐이 난다 어쩐다 하더니만!
남의 물건 말없이 함부로 가져가면 안 되지요
좋은 말 할 때 내 놓으시오
아주 범인 다루듯이 명령조다
이런 딱할 때가 어디 있나
그래 그 모자 얼마짜리요?
내 전혀 모르는 일이요만
뭔가로 변상해 드리겠소
이 영감이 누굴 잡고 장난치나?
그 모자 속히 돌려주시오
112 불러 추달을 받아야 제정신을 차릴 건가?
상황이 소란해 지자 탕 안에 욕객들이
우루루 몰려나와 분위기가 심각한 상태
욕객 중에 두 사람이 불쑥 나타나더니
아이구, 대감어른
선배님 아니십니까?
여기서 뵈옵다니요?
신세진 빚은 고사하고, 찾아뵙고 인사도 못 드렸으니
의관정리 예의범절 순서도 없이
우선 큰절부터 받으십시오
벌거벗은 채로 덜렁덜렁 다 드러내 놓고
미성년자 관람불가
무슨 코미디 장면이다
위기일발 한 순간에 구세주가 나타났다
자초지종 얘기를 듣고 난 후배
모자주인 앞으로 다 잡고 다가서더니
“당신 오늘 큰 실수 저질렀소
냉큼 다시 한 번 더 찾아보시오!”
아이구 이게 왜 여기 있지?
상기된 얼굴
옷걸이 아래 칸 신발장에서 문제의 모자가 튀어 나온다
쯧쯧! 자기 손으로 넣어놓고
무관한 생사람을 도둑으로 몰았으니
이걸 어쩔텐가?
정신없이 뒤숭숭한 틈을 타
주섬주섬 옷을 챙겨 쏜살같이 사라진 모자주인
저런저런 참 못난 사람
사과인사라도 하고 가야지?
구경꾼들 뒷말이 전직 형사 반장이라나?
“열 도둑 놓치더라도 한 사람 억울한 죄인 만들어선 아니된다”
어머님 당부 말씀 다시 한 번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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