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7-08-22
조선 초기 충정남도 아산군 중리
이씨 조선 500년 청사(靑史)에
길이 남을 청백리중의 청백리(淸白吏)
맹사성(孟思誠 1340-1438)이
손수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장장 600년의 영고성쇠를
관조하며 버티고 있단다.
지조 있고 절개 굳은
사대부(사대부)가 살만한 집
천하명당 유일무이(天下明堂 唯一無二)
삼대 적선 아니 하고는
찾기 힘든 이 자리
고려 말 우국충신
“금을 보더라도 돌과 같이 여겨라”는
아버님 유원을 재독(再讀)하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임금님 하사하신 사약(賜藥)을
드셨으니
『최영』장군이 살던 집을
우여곡절 역사의 능선을 넘어
장군의 손녀사위
맹사성이 대를 이어 살게 된다.
대 명당 정기 내려 받은 맹사성!
청렴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고
나라에서 주는 해묵은 양곡을
먹는데 익숙해져 있었다.
한번은 병조 판서가
국사(國事)의 자문을 구하기 위하여
맹사성의 집을 찾았으나
아무리 둘러보아도
정승이 살만한 집을 찾지 못하다가
마침내 하인의 안내를 받아
찾은 맹정승의 집은
너무도 볼품없는 형세가
오히려 병조판서 자신이
안쓰럽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초라했다.
국사(國事) 얘기가 끝나고
점심 밥상이 들어왔다.
그런데 밥 한술 다시 떠서
씹으시던 맹정승!
안색이 상기된 채
“부인, 밥맛이 왜이래요?”
“아이구, 오늘은 귀한 손님이
오셔서 이웃집에서 햅쌀을
구해다가......”
“무슨 소리요, 당장 돌려주시오!”
한평생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께 효도하는 가풍(家風)을
뿌리 내리게 한
충청도 양반의 명망을 천세에
떨쳤으니......
후일 영조대왕은
“忠孝世業淸白家聲”이란
(충효세업청백가성)
어필로 친히 내려 이집에
현판을 하사(下賜)하셨다.
일선 민원봉사실 창구 직원
자치단체 공직자들
청백리 풍년인데
함량미달 정치꾼 “좌왕우왕”
여의도 비행장엔 철새 도래지
북한산 북악산하 때묻은 “찌라시”
탐관오리 풍년일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