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17-07-18
만수산 만수동에
만수천(萬壽泉)이
있더이다
그 물에 술을 빚으니
만수주라 하더이다
이 술 한잔을 자부시오면
만수무강 하오리다
사모관대 쓰고 행례치른
맏사위로 부터
약주 한잔 받아 들고 살아생전
처음 들어 보는 권주가(勸酒歌)
장모님 두 눈에 이슬이 맺히고
원근에 일가친척 축하객들
새 김서방 노랫가락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만수동(萬壽洞)이 어디일까?
자! 김서방 나한테도
한 잔 따루시게
만수주 한잔 마시고
만수동을 찾아 봄세
얼쑤얼쑤 가득채워
만수동 찾는 길이 호락호락
그리 수월할까?
가야산 입구 홍유동은
고운 최치원선생이
말년을 보낸 유적이 유달리
남아 있는 곳이다
12세때 당나라로 유학하여
6년(18세)만에
외국유학생 과거 시험에 합격
당나라에서 명성을 날리다가
고국(신라)에 돌아와
관직생활을 시작
함양고을 수령이 되어
함양삼림공원을 조성시에
먼 훗날 백성들 식량걱정
상수리나무 심어 춘궁기
보릿고개 “도토리로 식량
기근을 면하라” 참나무를
심었단다
신라는 누렇게 시들어가는 낙엽이요
고려는 검푸른잎 발산하는
소나무에 비유한 말을 남기고
발길 닿는 데로 유람하다가
가야산 입산시(入山詩)에
“스님네여 청산이 좋다 말하지 마오
산이 좋으니 어찌 산을 나가리오
뒷날 내 자취를 두고 보시오
한번 청산에 들어가면
다시 안 돌아 오리다”
고운 최치원선생!
자기 혼자만 피난처 찾아
가야산 만수동 찾은 소인배 아니다
신라를 다시 일으켜 보겠다고
진성여왕에게 수차 정치개혁을
진언(進言)하였으나 지배계층은
흥청망청 부패의 늪에 빠져
신라천년 사직(992년)은
마침내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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