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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7-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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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용 경

 

아침까지만 해도 내 허리까지 오던 마당의 풀들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골목부터 개망초가 야생화인양 꽃밭을 이루었다. 마당에 불을 켜고 다시 보니 풀들은 다 사라지고 시원한 초록의 잔디밭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큰 걱정꺼리였다. 저 풀을 어떻게 할까 게이트볼 치러 오시는 어르신들이 얼마나 욕을 할까. 젊은기 풀도 뽑지 않고 마당을 저 꼴로 둔다고 오며 가며 혀를 차며 다니실까, 천성적으로 부지런하지도 않고 바깥일을 잘 하지도 않고, 우리 집에 낯선 남자들이 와서 일을 해주는 것도 싫었다. 내가 할 수도 없는 일이고, 다니다 뱀이라도 나올까 겁이 난다. 봄에 일찍 제초제라도 뿌려야 여름에 조금 편하게 살 수 있는데 그건 하기가 싫다. 아침에 일어나서 나가기 바쁘고 하루 종일 수업에, 작업에, 아이를 데리고 들어오면 열한시다. 마당에 엎드리고 앉아서 풀 뽑을 시간도 없다. 남편의 부재가 가장 크게 다가오는 부분이다.

 

하루 한 시간만 일찍 일어나서 몇일만 정리하면 될 일을 귀찮다는 이유로 미루어 둔다. 잡초를 뽑으려고 호미를 들고 땅을 파보았다 벌레가 개미부터 공벌레, 지렁이, 달팽이, 여치. 사마귀 몇 가지가 나오는지 모른다. 풀을 보면 풀약을 쳐야지 하다가도 여린 생명들을 보면 다 죽일 수 없어 꿈도 못 꾼다. 나는 자연주의도 환경론자도 아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방치해둔 마당에는 벌레들이 자기 집 인양 여유를 부린다. 방충망 앞에선 아침부터 매미가 울어대고 청개구리가 현관까지 들어와 있다.

 

친환경 농업에는 풀과 야채를 같이 키워 스스로 자생력을 키운다. 건강한 먹거리를 만들자는 운동도 한다. 나는 비닐이라도 씌워 조금이라도 풀이 덜 나는 방법을 찾아보지만 야채보다 풀이 더 빨리 자란다. 결국 내가 졌다. 동네 할머니들이 지섬한테는 못 이긴다고 했는데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시골에 살고 주택에 살면 감수해야 할 일이지만 풀 때문에 일을 못하는 나에겐 여름이 가장 고역이다.

 

부모님의 사고로 시골집이 비게 되었다. 합천에서 대구까지 출퇴근을 해야 했지만 비교적 시간이 자유로운 우리가 시골집으로 이사를 왔다. 시골생활을 시작하였을 때 마당에 잔디를 심고 남편이 출근하면 나는 마당으로 출근을 하였다. 잔디가 어우러지지 않아 매일 잡초를 뽑아야 한다. 조금 게으름을 부리면 어느틈에 풀이 자리를 잡는다, 화단 구석구석 돌틈에 동단풍을 심고 봄이면 노란 수선화를 심었다. 싸리꽃을 좋아해 산에서 싸리꽃을 캐다 심었다. 마당에 빨간지붕의 원두막도 지었다. 고등학교시절 빨간벽돌집의 담쟁이가 예뻐보여서 담쟁이도 캐다 심었다, 내가 심고 싶은 꽃과 봄이면 오일장에 나오는 유실수랑 꽃나무를 사다 심었다. 어떤 나무는 죽고 어떤 꽃은 잘 자라 계절 마다 꽃을 피웠다. 가로수로 심어놓은 배롱나무를 몰래 뽑아와 원두막 옆에 심었다, 지금도 배롱나무는 촌색시가 처음 바른 볼터치인양 꽃분홍 꽃잎을 터트리며 한여름을 이어간다. 싱그러운 초록이 있어 촌스러운 꽃분홍꽃도 예쁘다.

 

달고 검은빛의 오디가 익어 갈 때면 기와 지붕속에 살고 있는 참새들이 나뭇가지에서 조잘거린다. 아침 저녁 오고갈 때 입이 시꺼멓게 되도록 따먹고, 손이 닿는데까지 따서 냉동실에 넣어 둔다. 거름 한번 안주고 가꾸지 않아도 때가 되면 어김없이 새순이 돋고 올망졸망 자수정 보석 같은 열매를 맺는다. 새들이 노니는 자리를 내어주고 먹이가 되고 그 새가 눈 똥으로 이곳저곳에 종족을 퍼트린다. 한번도 심은 적도 없는데 마당구석구석에 홀로 나서 열매를 맺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굳이 가꾸지 않아도 알아서 살아지는 섭리를 가르쳐 준다. 꽃과 풀과 나무의 색은 생명이 있는 색이어서 더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당 곳곳에 도자기 오브제를 두고 옛날 항아리에 수련을 심어 연잎을 보는 것도 큰 행복이었다. 그때의 우리집 마당은 나의 세상이었다. 아이가 어려 잘 나가지도 못하고 집에서 보내야 하는 시간이 많아 마당을 놀이터로 삼았다.

 

주말이면 지인들이 찾아와 마당을 잘 누리고 갔다. 내가 한 요리를 맛있다고 행복하게 먹어주고 밤새워 원두막에서 술잔 속에 있는 달을 마셔가며 세월을 보냈다. 지인들은 땀 한방울 흘리지 않고도 훌륭한 전원을 즐길 수 있으니 별장을 가진 사람보다 별장이 있는 친구를 가지는게 더 좋다는 말을 하였다. 계절을 바꿔가며 앞 다투어 꽃이 피고 지었다.

 

남편손님, 내손님, 가족친지들 주말마다 손님들이 오고갔다. 호박잎과 보글보글 끓인 된장찌개, 매운고추를 잘게 다져 멸치를 넣고 뽁은 고추 다대기 맛도 일품이었다. 지금도 그때의 밥이 맛있었다고 한다. 그땐 손님이 오면 당연히 집에서 식사를 대접하였다. 별것 아닌 밥 한끼가 사람들에겐 고향의 맛이었으며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체 역할을 하였다. 평생 치루어야 할 손님들을 그때 다 치루었던 것 같다. 맛있는 밥 덕분에 내조를 잘하였다.

 

나의 놀이터였던 마당이 애물단지가 되었다. 집도, 마당도, 손님도 너무 힘들어 일부러 청하지도 않았으며 주말이 되면 우리가 먼저 대구로 피난을 나와 버렸다.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사람소리가 나던 집이 주인이 손을 놓아버리니 잡초밭이 되는 건 눈 감짝할 사이였다. 토끼풀이 자리를 잡더니 순식간에 잔디를 덮어버린다.

 

지인께 감사 전화를 드렸다. 비도 부슬부슬 오고 할 일도 없고 해서 우리집에 오셔서 예초기를 돌려 주셨단다. 가장 큰 걱정거리를 해결해서 너무나 감사했다. 집주인이 수업 때문에 나가고 없는 날 대문도 없으니 아무 말씀도 없이 혼자 오셔서 그 많은 풀을 다 베어놓고 가셨다. 아무것도 아니라고 잠깐하면 되는 일이라면서 나의 근심을 다 날려 버려 주신다. 그분의 인품이 친정아버지를 기억하게 한다. 배려나 친절을 상대방의 관점에서 그 사람이 원하고 필요한 것을 해주고 이만큼을 해주었으니 나도 이만큼을 받겠지 하는 기대가 없을 때, 해줄 수 있는 즐거움만 가질 수 있을 때가 진정한 배려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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