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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8-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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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원 교

율곡농협근무

 

사람과 친근한 동물은 개인 것 같다. 어릴 적 시골에는 강아지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집안의 낮선 사람을 경계하고 짐승들을 지키면서 때로는 산과 들에서 아이들과 함께 뛰어 놀아 주는 역할도 했다. 나는 가족 중 유난히 강아지를 좋아했다.

뒷집에 형복이는 사냥을 잘하는 개를 가지고 있었고, 앞집 상일이는 싸움도 잘하고 주인 말을 잘 듣는 똑똑한 개가 있다고 하면서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강아지 한 마리만 사달라고 몇 달을 졸랐다.

 

시장 날 마음에 드는 강아지를 골라 품에 꼭 안고서 집으로 왔다. 셰프드라는 종류로 엄마의 젖 냄새를 떨치지 못한 포동포동한 어린 강아지였다. 낯설어서 인지, 엄마의 품이 그리 운지 밤이 되자 울기 시작했다. 자정이 될 무렵 우리 집을 시작으로 앞집과 뒷집 개들이 연이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박자를 맞추면서 돌림노래를 이어 갔다. 가족의 밤잠을 방해하고도 모자라 고요한 동네의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아이뿐 아니라 앞산과 뒷산의 이름 모를 풀잎까지 뒤척이게 했다. 여러 날을 풀이 죽어 제대로 먹지도 않는 강아지가 마음에 걸려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부모님께 어렵사리 졸라 산 강아지라 귀찮은 내색을 보일 수가 없었다. 새벽녘 추운 겨울 소의 먹이로 썰어놓은 볏집으로 바닥을 푹신하게 만들고, 낡은 옷으로 부들부들 떨고 있는 강아지의 등을 덮어주며 어머니와 같은 심정으로 정성을 다해 돌보았다.

 

하루는 끙끙대는 강아지가 안쓰러워 방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시간이 지나자 똥과 오줌으로 인한 고약한 냄새가 방안가득 퍼졌고, 강아지와는 더 친숙해졌다. 언제부턴가 가족 같은 강아지의 이름을 쫑쫑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일주일정도 지나자 환경에 익숙해져 가는지 가족들을 보면 꼬리를 흔들며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었다.

 

학교에서도 머릿속에는 쫑쫑이로 가득 차서 집에 도착하자 숙제하는 것조차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종일 집에 묶여있는 쫑쫑이의 마음과 학교의 울타리에 갇혀있던 나의 억눌린 감정이 일치한 것인지 목줄을 풀자 숨어있던 에너지가 폭발을 했다. 꼬리를 흔들고 손을 핥으며 안아달라며 용수철처럼 뛰는 쫑종이에게 무한한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산과 들로 앞서거니 뒤서기니 뛰면서 네로와 파트라슈의 만화처럼 즐거움에 몰입한 나머지 몰려오는 어둠조차 잊어버리고 저녁 늦게 귀가하가 일쑤였다.

 

어느새 쫑쫑이는 어린티를 벗어 중개에 이르렀다. 짖는 연습을 하려는지 집안의 낯선 개미라도 보이면 우렁차게 짖으려 애를 썼다. 뒷집의 장닭이 넘어 와도 경계를 하며 짖고, 자신의 몸집보다 큰 어린송아지가 담장 안으로 훌쩍 뛰어 들어와도 밥값을 하려는지 짖어 댔다.

 

쫑쫑이의 짖는 강도에 따라 가족은 짐작할 수 있었다. 손님이 오시는지, 옆집 고양이가 지나가는지, 쫑쫑이를 좋아하는 앞집 애기가 엄마 몰래 아장아장 걸어오는지 알 수 있었다. 한울타리에 생활하고 있는 소와 닭에게는 장난을 걸기도 하고, 집을 가끔씩 드나드는 친척들에게는 꼬리를 흔들며 자그마한 소리로 한번만 짖으며, 낯선 사람이나 외부의 동물들이 집안으로 들어오면 가장 큰 소리로 위엄 있게 짖었다.

 

쫑쫑이는 우리 집의 막내로 가족이 외출을 할 때면 집에 남아있는 소와 닭 등을 지키는 역할에 충실했다. 목줄을 풀어놓아도 집밖으로 나가는 법이 없었지만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간섭하는 것이 막내의 장점이기도 했다.

 

하루는 아버지가 밭에 농약을 치고 대청마루아래 뚜껑을 제대로 잠그지 않은 것이 화근이었다. 밭일을 마치고 평소처럼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집에 도착하니 썰렁한 기운이 느껴졌다. 집안을 둘러보니 마루 밑에서 단단한 돌처럼 싸늘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쫑쫑이를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친구로 여겨왔기에 갑작스런 주검 앞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모란 잎에 가득고인 이슬방울이 무게중심을 못 이겨 바닥으로 주르르 흘러내리듯. 쫑쫑이로 가득 채워진 해맑은 눈망울 속에서 슬픔의 눈물을 쏟아내는 모습을 가족들은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는 나를 꼭 안으며 목 메인 소리로 목 너머 밭에 묻고 오자고 하셨다. 어머니는 쫑쫑이를 지게에 지고 가는 길에 동네 사람들도 가슴이 아픈지 위로의 눈인사를 보내는 것 같았다. 밭모퉁이에서 간단한 장례를 치르고 돌아오면서 다가오는 장날에 쫑쫑이와 같은 놈을 한 번 찾아보자며 어머니는 위로의 말을 건넸다. 지금도 그날의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지 쫑쫑이가 묻혀있는 곳을 지나면 동심의 아픔에 마음이 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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