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6-08-25
6월 호국보훈의 달을 시작으로 광복절이 있는 8월까지는 한국의 아픈 근현대사를 되새겨보게되는 시기라고 볼 수 있다.
합천으로 보면, 한국인 원폭피해의 역사까지 더해서 더욱 추모의 분위기가 높아지는 시기이다. 이에 반해 한국전쟁 전후 국가 폭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한 역사는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어 지자체와 지역의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현재 합천군내에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희생자는 밝혀진 규모만 64명으로 민간인 희생자의 특성상 밝혀지지 않은 규모는 더 많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지난 2006년 1기 과거사 진상규명조사가 시작된 이후 올해부터는 3기 진상규명신청을 받고 있으며, 그동안 밝혀진 민간인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위령제가 이어져오고 있다.
(사진) 봉산면 권빈리 싸리터재에 설치된 민간인학살지 안내 표지판
합천군의 경우에는 위령제는 지난 2010년 경찰청 보조금 지원으로 시작되어 왔고, 2017년 합천군에 이와 관련한 조례를 제정되면서 합천군의 보조금 지원으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하지만, 위령제 개최 시기가 11월 중에 치러지리고 있으며, 지역민들의 관심속에 진행되지 못하며, 조촐한 실내행사로 진행되어 오고 있다.
더욱이 위령제 외에는 지역내 이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한 추모비 같은 시설조차 세워져 있지 않다. 다만, 봉산면에 민간인 집단 희생된 지역에 대한 안내판만 하나 세워져 있을 뿐이다.
합천군이 2017년에 제정한 ‘합천군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위령사업 지원에 관한 조례’에는 관련 위령사업을 합천군이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이에는 민간인 희생자를 위한 위령제를 비롯해 민간인 희생자와 관련된 자료의 발굴·수집 및 간행물 발간, 평화인권을 위한 교육 사업 등을 명시하고 있다.
이 중 위령제 외에는 전혀 진행하고 있는 위령사업이 전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조례 제정 당시인 2017년 박중무 군의원의 대표발의한 조례 제정을 심의한 내용을 보면, 당시 유가족들도 추모비 같은 시설 건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음을 확인 할 수 있었고, 합천군에 6.25전쟁 당시에 어떤 민간인 희생자가 얼마나 되는지 실태파악부터 필요하지 않겠냐는 의견들도 나왔지만, 조례 발의 주체가 군의원이었기 때문인지 조례 제정 이후 합천군의 별다른 조치는 없었다.
한국전쟁과 아무런 상관없는 민간인에 대해 국가가 저지른 폭력으로 인해 집단 학살된 사례는 과거 역사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지만, 언제나 전쟁에 가려 조명받지 못하고, 국가의 외면속에 역사의 한줄도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합천군의 역사를 모은 ‘합천군사’에도 제대로된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있다.
2006년 시작된 진상조사를 통해 밝혀진 희생자들을 보면, 19489년 8월, 9월 경찰 및 지리산 공비토벌 특수경찰에게 통비분자라는 이유로 적법한 절차 없이 비무장, 무저항 상태의 민간인을 희생시켰다.
이외에도 도보연맹등에 가입했던 또는 가입한 적이 없는 합천주민 53명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인민군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경찰들에게 사법적 절차 없이 예비 검속되어 산청군 방아재 및 마산 앞 괭이 바다에서 집단 희생되었다. 또, 한국전쟁 전후 빨치산에 협조했다거나 협력했을 것이라고 추정하여 국군과 경찰에 의해 합천읍 기리골 등에서 집단희생 된 사례가 밝혀졌다.
전쟁으로 외치는 평화보다 전쟁속에 치러지는 무고한 민간인 학살의 역사속에 더욱더 평화의 필요성이 더욱 다가올 수 있다.
합천군의 한 관계자는 “합천군의 민간인 희생자 규모가 상대적으로 적다고 볼 수 있어 위령사업에 대한 지자체의 관심이 적다고 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한 군민은 “1,000명이 희생되면 관심을 받고, 100명이 희생되면 관심을 못 받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그 역사의 가치보다 규모로 판단해서는 안된다. 갈수록 남은 유족도 줄어들고 있을텐데, 더 늦기전에 합천군과 지역사회의 관심이 모아지길 바란다.”고 전했다.
현재 정부는 제3기 진상규명을 위한 신청을 받고 있으며, 오는 2028년까지 받는다.
배기남 기자(hchknews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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