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2026-05-17
합천에는 참 좋은 시설과 기관이 많다.
농민을 위한 농협이 있고, 군민을 위한 영화관이 있고, 주민을 위한 평생교육원이 있다. 야외공연장도 있다. 회의실도 있다. 강당도 있다.
건물만 보면 합천군민은 문화와 교육과 공동체 활동을 아주 풍성하게 누리며 살고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면 조금 묘하다.
농협 하나로마트에 가보면 수입산 과일이 한자리를 떡 차지하고 있다.
물론 세상은 글로벌 시대다. 바나나쯤은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가끔은 묻게 된다.
“농민조직이 맞긴 한가?”
지역 농민들은 판로 걱정을 하고 있는데, 협동조합은 세계시민의 과일 선택권을 보장하고 있다. 참으로 국제적인 감각이다.
합천시네마도 있다.
군민들의 문화생활을 위해 만든 소중한 공간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단체관람을 해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돌아온 답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미 자신들이 가져온 영화가 있기 때문이란다.
순간 조금 헷갈렸다.
영화관이 영화를 위해 존재하는 건지, 주민을 위해 존재하는 건지.
야외공연장도 마찬가지다.
야외공연을 하겠다고 신청했더니 소음 이야기가 나온다. 야외공연장에서.
물론 틀린 말은 아니다. 공연은 시끄럽다.
축구장도 공 차면 시끄럽고, 씨름대회도 함성소리가 난다.
그러나 공연장에서 공연 소음을 걱정하기 시작하면, 이제 남는 것은 조용한 공연뿐이다. 어쩌면 박수도 소음일 수 있겠다.
평생교육원은 더 재미있다.
주민들이 생업을 마치고 저녁에 모여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하자고 하면 난감해진다. 직원들이 남아 있어야 하고 초과근무 수당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란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다만 주민들은 낮에 농사짓고 장사하고 일한다. 그러니 저녁에 모일 수밖에 없다. 결국 주민들은 배움을 원하지만, 시스템은 퇴근을 원한다.
가만 생각해보면 합천은 시설이 부족한 곳은 아니다. 오히려 시설은 꽤 많다. 다만 주민들이 그것을 자기 공간처럼 사용하기 어려울 뿐이다.
회의실은 있는데 회의하기 어렵고,
공연장은 있는데 공연하기 어렵고,
영화관은 있는데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어렵고,
평생교육원은 있는데 저녁에는 평생 닫혀 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지역의 공공시설은 주민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정작 주민이 사용하려 하면 사용설명서보다 제한사항이 먼저 나온다고.
어쩌면 합천의 가장 조용한 소음은 주민들의 한숨소리인지도 모르겠다.
글 | 함께하는 합천
(함께하는 합천은 합천의 지역 현안과 정책을 주민의 시선에서 살펴보고 공론화해 온 시민 모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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