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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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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장섭

 

이제 무더위도 점차 꼬리를 감추는 듯하다. 말복과 처서가 지났으니 그럴 수밖에 없으리라. 옛 어른들의 나이와 시절은 못 속인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한창 더울 땐 인사가 휴가는 다녀왔느냐는 말을 많이도 들었다. 그 무렵에는 부산 해운대, 강릉 경포대에 몰린 해수욕 인파가 큰 뉴스였기도 했다. 하긴 우리 합천도 여름철만은 유명세를 탔다. 휴가에 대한 인사를 들을 때마다 나는 마음속으로 나의 휴가는 겨울철이 될 것이요하고 지나쳐 버리곤 했다.

 

왜냐면 더위보다는 추위를 좋아하는 성품이기도 하지만 가을 단풍의 향연이 끝나고 벌거벗은 자연이 나에게는 좋으며 그때 나목(裸木)을 보며 대화하는 게 큰 즐거움이 되기 때문이다. 눈이 오는 날이면 더욱 설렐 테고. 비가와도 좋다. 겨울비를 맞으며 걷는 즐거움도 보통은 아니지 않은가. 그렇다고 여름휴가를 못마땅해 하는 건 아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정이 있고 특성과 취향이 각자 다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특히 요즘같이 다양성이 존중받는 사회에서 그것을 두고 이러쿵저러쿵할 일은 결코 아닌 듯싶다.

 

휴가란 사전적 의미를 보면 학교나 직장에서 일정한 기간 동안 쉬는 일로 되어있다. 영어로는 Vacation, Holiday로 쓰지만, 전자는 미국에서 후자는 영국에서 많이 사용하는 듯하다. 아무튼 휴가란 언제나 신명 나는 일이라 영어의 단어마저 밝고 이쁘게 생각된다.

 

휴가는 주로 여름이 많은 것 같다. 그도 그렇듯이 여름에 사람들이 다른 계절보다 많이 지치기 마련이다. 직장인도 그동안 받은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있는데 더위에 휴가를 내어 쉬면서 힐링도 하고 휴가 후에 업무효율도 많이 상승하리라는 기대가 일반적일 것이다.

 

휴가를 분류해보면 가족단위, 연인들, 친구들, 동호인들과 가는 것도 있겠다. 그래도 가족단위가 대세를 이룬다고 본다. 가장(家長)의 입장에서 보면 가족 구성원이 휴가를 가자는 성화에 그냥 있지는 못할 것 같다. ‘누구네는 휴가를 갔다더라, 누구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다더라는 압력에 어느 가장인들 아내와 아이들 이기는 장사가 어디 있겠는가.

 

그럼 어디로 가는가도 문제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계곡을 찾을 것이고 바다를 좋아하는 가족이라면 해변을 찾지 않겠는가. 옛말에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란 말도 있듯이 말이다. 그런데 휴식(休息)하러 간다는 게 휴가(休暇)라고 본다면 필자의 생각으로는 라는 한자를 풀어서 사람()변에 나무()자를 있는데 나무가 많은 곳이 휴식으로는 좋을 듯도 싶다.

 

그런가 하면 무더위에도 농어촌에서 봉사하는 고마운 사람들도 우리 주위에는 더러 있다. 또한 소외당하고 가난하고 병들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는 사람들도 있다. 자신을 위한 휴가가 아닌 봉사하는 사람들은 자기희생을 통해 아픔, 외로움, 고통을 공유하며 땀을 흘린다. 그들은 사랑을 실천하는 수행자가 아닐까 싶다.

 

필자는 휴가 때면 고향을 찾아 희망을 전염시키고 휴가란 이렇게 보내는 거다라는 의미를 부여해주는 사람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는 강만수 전() 장관이다. 강 장관은 합천이 낳은 성공한 사람 중의 한 분이다. 그가 장관을 지내고 KDB산업금융회장을 했다고 해서 성공했다고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는 명성이 있으면서도 꾸밈없고 소박한 삶을 산다.

 

그는 휴가 때면 꼭 고향을 찾는다. 먼저 선산과 제실을 찾고 숙부를 비롯한 동네어른들에게 인사드리고 고향집에서 지인과 집안의 후배들과 정담을 나누기를 좋아한다. ‘내가 그래도 한 인물 한 사람인데하는 티를 전혀 내지 않는다. 젊은 사람들이 인사차 오면 앉아서 맞이하는 경우가 없다. 물론 그 후배들이 떠날 때도 마당까지 나가서 웃으며 배웅하는 걸 보면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사람은 몸집이 크고 유명세를 타다 보면 거들먹거리고 폼을 잡고 자기 자랑을 많이 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고향을 찾을 때 모이는 사람들 면면을 보면 한결같이 오랜 친구와 집안사람과 동네 후배들이다. 그의 대화는 전문적인 그리고 어려운 용어를 쓰지 않는다. 어린 시절과 지역의 역사가 주류가 된다. 초등학교 시절의 교가와 옛 합천군가도 틀림이 없다. 어릴 때 송구 죽 먹고 깜부기 먹으며 자란 얘기며 차가 지나갈 때는 돌멩이를 던졌다는 얘기에 다들 웃음꽃을 피운다. 필자가 초등학교에 다닐 때도 차가 지나가면 어김없이 돌을 던지고 주먹으로 욕하고 전봇대 애자는 박살을 내야 직성이 풀렸다.

 

어릴 때 합천 고개만당이에서 지나가는 그를 향해 돌팔매 당한 얘기도 실감 나게 하였다. 그 시절에는 그날그날 어떻게 하면 탈 없이 지나갈까가 걱정거리였단다. 오죽하면 서울에서 교편생활을 한 선배는 70이 넘은 지금도 고향에 오기가 싫다고 했다. 어릴 적 괴롭힘당한 기억 때문이란다.

 

강 장관은 초등학교에 다닐 때 가건물에서 가마니를 깔고 공부하였다는데 후배인 우리도 그랬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삿갓을 한곳에 포개둔 것이 지금 생각해보면 장관이었을 것 같다. 귀가할 때는 삿갓으로 신장로에 움푹 파여 물이 고인 곳에 삿갓머리 팽이돌리기를 많이 하여서 어머님께 꾸중을 달고 지냈다.

 

최근에 그는 조선일보에 기고와 칼럼을 발표하여 유심히 보게 된다. 내용이 난해하지 않으면서 촌철살인 같은 표현에 대리 만족을 느낀다. 금융회장으로 있을 때의 기사에는 음주문화에 대해 쓴 글이 지금도 나의 뇌리를 때리고 있다.

 

첫째는 술잔 돌리지 마라. 둘째는 취하지 말고 즐겨라. 셋째는 술잔을 강요하지 마라. 넷째는 점심땐 한 잔만 마셔라. 다섯째 저녁엔 1차로 끝내라 등의 내용은 술 마시는 사람들 모두가 새겨들어야 할 것 같다. 이와 같은 내용을 듣는 재미도 휴가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선물 같은 것이며 여름철 소나기 같은 청량감이 있어 소개해봤다.

 

휴가를 가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그보다도 적당한 경비로 보람과 좋은 추억이 되는 휴가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휴가후유증(Post holiday syndrome)이 예삿일이 아니라 하는 말이다. 휴가로 경비, 장소, 먹거리 등의 문제로, 그리고 잘 챙기지 못한 탓으로 피로감만 가중된 사례도 회자되곤 한다.

 

이제는 가을이 문턱에서 기다리고 있다. 휴가로 인한 무기력증을 해소하고 집중력저하를 잘 추슬러서 일상으로 돌아갈 일이다. 필자도 지금부터는 체력관리를 잘하여 겨울바람과 눈비를 맞으며 한 점 가린 곳이 없는 벌거숭이 나목(裸木)과 만나는 행복한 겨울 여행을 서서히 계획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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