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5-933-7463

뉴스

작성일 2018-01-23

79bf4a88c8c5b77e0beff2d088f7e2d8_1516699353_09875.jpg
2017년 문학레지던스사업 기획자 이용형

 

지천명(知天命)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말로 공자님이 70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정리하면서 50이 되어 하늘의 명령을 깨달아 알게 되었다는 뜻이다. 공자는 여기서 15세에는 학문에 뜻을 두었다 하여 志學이라하였고 30세에는 뜻이 확고하게 정립하였다 하여 而立, 40세에는 매사에 미혹되지 않았다 하여 不惑, 60세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다 하여 耳順, 70세에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 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 하여 從心所欲라고 하였다.

 

공자님이 73세에 돌아가셨기 때문에 8090은 정의 하지 못하였다. 만약 공자님이 100세를 살았다면 8090 그리고 100세를 어떻게 정의하였을까 궁금할 때도 있다. 오십이 되었을 때 친구들끼리 술자리에서 이제 육십 밑자리 깔았다고 나이를 과대포장하면서 40대와 차이 나는 어른 행세를 하려고 한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오십도 종반이 되었다.

 

지천명(知天命)을 넘어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지금.

 

동기의 대부분은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라는 말처럼 삶의 여유와 참 맛을 느끼지도 못하고 평생을 받친 직장과 산업현장에서 떠나고 있다. 해가 갈수록 구조조정과 명퇴로 직장에서 나와 새로운 일거리를 찾는 친구들이 늘어나고 있다. 직장에서의 졸업은 경제력과 직급의 성공여부에 상관없이 그동안 삶과의 단절로 인생의 새로운 출발점에 서게 한다. 사업을 하는 친구들은 사업의 성공 여부에 따라 나머지 인생을 준비하는데 희비가 많이도 엇갈린다. 직장과 산업현장에서 떠나야하는 50. 그것은 세상의 중심에서 사라져 가는 것으로서 놓을 줄 알고 버릴줄을 알아라는 세상사 이치를 스스로에게 가르치는 것 같다.

 

해가 갈수록 지학과 이립의 나이에 세운 삶의 신념인 어떤 줄서기에도 끼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의 머리로 생각하면서 돈과 권력과 명예를 얻기 위하여 치열하게 도전하던 삶에 대한 열정이 조금씩 옅어지고 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조직을 만들어 일을 펼치던 의욕적인 삶이 사라지고 현실의 일에 안주하면서 잘되는 일도 못되는 일도 모두 다 내 운명이자 내 업으로 받아들이면서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늘의 뜻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러면서 자신에 대한 기대치와 자식 그리고 나와 인연 있는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다.

 

한평생 같이 살 수 있을 것 같은 부모님과의 이별도 오십대에 맞이하였다. 한 대 앞선 세대의 어른이 모두 가신 이후 벌초와 종친회 등 크고 작은 종사의 일에 나가는 것이 선택이 아니라 의무가 되었다. 집안 어른의 자리는 어렸을 때 생각처럼 명령과 지시만 하는 자리가 아니라 그만큼의 책임이라는 짐을 져야한다는 것이다. 선산에 있는 조상을 섬기는 일에 삶의 최고의 가치를 두었던 부모님세대의 정신을 지키기 어렵고 더구나 다음세대로의 전승은 생각도 못할 것 같다. 조상의 선산아래 살면서 선산을 지키는 일은 고사하고 부모님의 무덤과 제사조차 가꾸고 모시는 일이 어쩌면 우리세대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기우가 아니기를 바랄뿐이다.

 

오십을 보내면서 또 하나의 변화는 TV와 신문이 전하는 뉴스와 세상사일에 관심이 적어졌다는 것이다. TV와 신문이 전하는 뉴스 그 자체가 공해로 들리고 사회와 이웃과 소통해야할 담을 스스로 만들고 있다. 새로운 조직에 들어가 사람을 만나 사귀기가 두려워지고, 처음 만난 사람은 몇 번이고 재보고 믿음과 확신이 갔을 때 연락처를 저장한다. 그동안 이삼십년간 활동하였던 단체마저 정리하고 조용히 살고 싶은 생각으로 하나하나 정리하고 있다. 일이 다가왔을 때 단순하고 가볍게 살고 싶은 욕심이 더 앞선다. 사회와 이웃과의 소통을 단절시킨 그 자리는 종교와 스포츠채널이 대체되고 한 평생 이웃으로 살아가고픈 소중한 벗 몇몇과 교류하는 일에 마음을 더 쓴다. 그리고 스님과 신부, 목사님의 설법과 설교를 들으면서 참 나의 자유를 찾아 유한의 생명을 무한의 생명으로 이끌어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님을 알고자 종교적 가치에 점점 매몰되면서 지금 하는 일 모두가 부질없는 짓 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한다.

 

지금 돌아서서 지나온 50여년의 삶을 생각해 보니 머리도 좋지 않으면서 끈질긴 노력도 없이 더구나 한 우물을 파지 않으면서 이것저것 다 이루려던 욕심만 가졌던 것 같다. 그 결과 가족들에게 행복보다는 고통을 더 많이 선물한 것 같다. 지나온 삶에 대한 후회도 많지만 두 번 살 수 없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준 신의 공평한 선물인 것이다.

 

다시 태어날 수 없고, 젊은시절로 되돌릴 수 없는 나의 삶이라는 인생

 

백년을 산다 하여도 반을 넘긴 지금. 그래서 공자의 知天命이라는 말과 뜻이 새롭게 다가온다.

 

명예와 돈과 권력에 관한 너의 그릇은 이것이야

 

너의 능력은 이것 밖에 안되.

 

이것은 사람의 노력과 능력이 아니고 하늘의 理致.

 

하늘의 理致를 알고 그것에 순응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知天命이야.

 

한평생 유량 생활을 해야만 하였던 공자님도 50대에 자신이 처한 理致를 깨달아 느끼고 知天命이라는 말을 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듣다.

 

내 나이 60(耳順)이 되면 모든 번뇌의 근원이라는 탐진치(貪瞋癡)의 마음을 벗어버리고 누가 나를 욕하고 경멸하여도 그 理致를 알고 또한 가진것에 만족하면서 매사에 감사할 줄 알고 웃을 수 있는 이순(耳順)의 경지를 깨달을 수 있을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