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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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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실

삼가초등상담교사

 

언니가 통영특산물인 멸치를 보내왔다. 손가락 한마디만 한 게 맛있어 보여 얼른 가스 불에 프라이팬을 올리고 청양고추와 호두를 넣고 멸치볶음을 만들었다. 또 멸치 우려낸 육수에 표고버섯을 갈아 넣고 우거짓국을 끊었더니 남편이 맛있다며 두 그릇이나 비워냈다. 쬐그만 멸치로 하여 행복한 저녁만찬이었다.

 

멸치 때문일까? 갑자기 친정어머니 생각이 났다. 초등학교 시절엔 친한 친구들 끼리끼리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곤 했다

 

당시 제일 인기 있는 반찬은 단연 계란말이였다. 그런데 어머니는 도시락에 콩장조림과 멸치볶음 자주 싸주셨다. 철이 없던 나는, 계란말이를 싸달라며 반찬 투정을 부리곤 했었는데, 멸치반찬도 어머니가 큰 맘 먹고 챙겨주셨다는 것을 나이가 들어서야 알게 되었다.

 

멸치는 작지만 대단한 녀석들이다. 한 마리 일 때는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뚤뚤 뭉치면 상상을 초월 할 정도로 힘이 세지는 것 같다. 언젠가 TV에서 멸치잡이에 관한 프로를 본 적 있다. 멸치 무리가 흩어져 유영 할 때는 존재가 아주 미미했는데 한데 뭉쳐 움직이니 거대한 물체 같아 보였다. 전설속의 바다괴물 레비아탄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멸치를 가득 잡은 그물을 육지로 끌어올리던 어부들의 비지땀 흘리던 모습도 그려졌다. 볼락이나 돔 같은 어종들은 낚시로도 잡을 수 있지만 멸치는 워낙 작아 낚시로는 어림없다. 떼를 지어 다니는 멸치를 잡으려면 사람이 한데 뭉쳐 그물을 던지고 끌어올려야 한다. 결코 얕잡아 볼 수 없는 대상인 것이다.

 

우리의 식탁에 꼭 필요한 멸치는 국물 맛을 맛깔나게 해주고 칼슘과 단백질로 건강까지 챙겨준다. 잔치에 반드시 동반되는 국수는 멸치육수가 제격이다. 겨울이면 연례행사처럼 만드는 국민 밑반찬이 김장김치다. 여기에 멸치젓갈을 뺀다는 것은 경상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렇게 만들어진 풍성한 김장은 겨울에서 길게는 봄까지 우리들의 식탁을 책임진다.

 

묵은 김치로 만드는 돼지고기찌개나 고등어조림 등 다양한 조림과 찌개요리 역시 멸치젓으로 숙성된 김치면 한맛 더 난다. 김치전, 김치볶음밥도 멸치젓이 숙성시켜준 김치가 있기에 가능하지 않을까.

 

멸치잡이 영상 엔딩장면에 흘러나오던 제주도 민요가 뇌리를 맴돌았다. 인터넷으로 제주도 민요 <멸치후리는 노래: 멜 후림 소리>를 검색해 보았다. 역동적인 가락으로 불리는 이 민요는 멸치 그물을 잡아당기는 동작과 밀착되어 있었다.

 

어어야뒤야 어기여뒤라/ 동게코는 응그문여에/ 서게코는 소여군에 그물 부치곡/ 추자안골 사서 안골궤기/ 농겡이와당에 다 몰려놓곡/ 압궤기는 선진을 놓곡/ 뒷궤기는 후진을 노라/베 테우에 놈덜아/ 우베리를 살짝 들르라/ 한불로 멜 나간다/ 당선에 망선에 봉기를 꼽아/ 우리 옛조상덜 허던 일들/ 잊어불지말아 되살려보자/ 풍년 왓구나/ 농겡이와당에 돈풍년왓구나/ 어어야뒤야 어기야뒤라

 

제주도 노랫말을 이해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물에서 멸치를 털어내는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지 않는가. 나는 그 영상을 본 후론 멸치를 작다고 무시하지 않게 되었다. 또 우리에게 온몸을 던져 베풀고 있는 혜택을 생각하며 멸치도 생선이냐?’ 는 우스갯소리도 삼가게 되었다.

 

솔직히 인간이 멸치만큼이나 누군가에게 제 자신을 던져 베풀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따뜻하고 정이 넘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 현대인들은 대부분 큰사람, 강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바다 속에서 큰 물고기는 포식자들이다. 인간 사회에서도 큰사람 강한 사람은 포식자와 같은 행동양식을 보인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 내 것을 키우고 강한 척하면서 약자를 괴롭힌다.

 

꼭 누군가를 짚어 말할 것도 없다. 나 자신은 누군가에게 베풀려고 생각해본 적이 있었는가? 내 남편 내 자식 그리고 이웃들에게 진국이 되려고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자기중심적인 생각으로 불만과 투정을 앞세우지는 않았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가슴 시린 사람에게 따끈한 국물 같은 사람, 굶주린 사람에게 포만감을 주는 사람이 되려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멸치에게조차 부끄러워지는 나 자신이 보였다.

 

멸치는 자신을 던져 모든 생명체를 부양하는 큰 고기다. 오늘도 저녁 식탁에 매콤달콤한 멸치 볶음과 멸치육수로 된장찌개를 끓여 올리고 가족들 사이에서의 내 역할을 생각해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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