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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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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군 문해교사 윤원정

 

자연과 함께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지핀다. 늘 이 시간이면 하루를 마무리한 후 가마솥에 물을 채우고 조금은 경건해진다. 오십 평생 도시에 살다 2001년 이곳 산골 오지마을로 들어와 자동차, TV, 냉장고, 세탁기 없이 생활에 필요한 몇 가지만으로 산골 살이가 시작되었다.

 

평생을 과수농사 하셨던 아버지, 중학교 방학 때 과수원에 가면 빨간 사과는 늘 뿌연 약물로 덮여 있었다. 그 아래에는 밭에서 나는 여러 가지 작물들 고추, 오이, 상추, 토마토, 땅콩, 포도 등이 옹기종기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보며 예쁘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아마 그때 그 생각들이 무의식 속에 내재되어 시골 살이에 만족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도시에 살면서도 늘 마흔이 되면 시골 가서 텃밭을 가꾸며 살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삼십 대 후반에는 알레르기 비염으로 기관지가 약해져서 산행을 몇 년간 다녀보니 몸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의식주에 관한 바른 삶의 고민을 하게 되면서 자연농업에 대한 책들을 보고 강의도 들었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고 체득하게 되었고 시멘트가 아닌 땅을 밟아야 하고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먹음으로써 바르고 행복해지는 삶이 되는 것이라 깨달았다.

 

이곳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져 있어 사계절 모두 산에 가면 다양한 식물들이 있어 먹거리가 지천이다. 하루 네 시간 정도의 노동으로 널널한 하루를 보낸다. 겨우살이는 산골이라 춥지만 재미있다. 앞 개울물이 꽁꽁 얼어 도끼로 동그랗게 얼음물 깨고 부엌에서 더운물로 빨래를 치대어서 얼음 밑 흐르는 물에 설렁설렁 흔들어주면 저절로 헹궈지는 것이 참 재미있다. 빨랫줄에 널어 낮 동안의 강한 햇볕에 녹으면서 말려진다.

 

한낮에는 지게에 톱과 낫을 묶어서 1km 산 쪽으로 비스듬히 올라간다. 쓰러진 나무, 죽은 나무들을 자르고 쳐서 칡넝쿨로 묶어서 한 짐 지고 내려오면 등 쪽이 젖을 정도로 땀이 난다.

 

오후 4시면 군불 지피고 저녁 먹고 부엌에 있는 욕조에 뜨거운 물을 부어 반신욕을 한다. 반신욕을 하고 나면 온몸이 녹아내리듯 개운해진다. 두 평 남짓한 작은방은 방바닥 밑의 지기와 구들의 온기로 온몸을 편안하게 해준다. 마치 탯줄로 이어진 어머니 품속 같은 아늑함이 느껴진다.

 

나를 대하는 자연과 사람들도 이렇게 아늑하고 편안함을 느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더 많이 자연과의 교감을 체득하고 수행하는 삶이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이 먼저 평화롭고 행복해져야 누군가에게도 나누어주고 함께 할 수 있지 않겠는가 라는 생각에 삶이 경건해진다.

 

이 집은 흙벽치기로 지은 백 년은 된 듯한 흙집이다. 구들장이 내려앉고 연기가 방으로 새어 나와 다시 구들을 놓기로 하고 60년 구들장인 어르신과 넉넉하게 약속해두었다. 혼자서 천천히 구들돌을 들어내고 고임돌의 모양과 놓임 새를 보고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었다.

 

옛 선인들의 지혜로움과 정성스러움에 놀라웠다. 우리 인간의 삶에서도 모든 것이 이렇게 정성을 다할 수 있다면 예술적인 아름다운 삶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저녁이 아름다운 집이란 시가 있듯이 짧은 인생의 하루 중 즉 노년이 아름다우려면 늘 깨어있는 의식과 관조적인 삶에서 내면의 향기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니 늙어갈수록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틀 동안 작은방 세 칸 구들 놓아주시고 가셨다. 굴뚝에는 환풍기라는 것도 없다. 바깥에 거센 바람이 불어도 조금의 연기도 앞으로 나오지 않고 쭈욱 구들 쪽으로 불길이 당기듯이 들어간다. 방에서 나무 타는 소리만 듣고도 잘 타고 있는지 감이 온다는 거 신기하기도 하다.

 

바깥 사계절의 날씨에 관계없이 방 안 습도계는 일 년 내내 60퍼센트를 가리키고 있다. 방바닥 밑지기와 흙벽이 습도를 조절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기계로 찍은 황토벽돌로 지은 집은 공기구멍을 막아 바깥 날씨가 건조하면 방 안 습도가 낮아져 가습기를 사용해야만 아기를 키울 수 있다고 한다. 건조함에서 오는 감기 알레르기 면역력 약화 때문이라고 한다. 따뜻함의 편리함만을 쫓다 병을 얻게 되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오래전 유럽의 한 젊은 남자가 우리의 한복문화에 이끌려 서울의 한옥에서 살아간다고 한다. TV에서 언뜻 보고 우리 구들문화의 우수성을 알아차리고 더구나 실천한다는 모습에 만나서 얘기라도 나눠보고 싶었다. 사라져가는 우리의 구들문화, 부디 다시 살려 국민건강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가져본다.

 

집터에는 저마다의 기운이 흐른다는 걸 살아가면서 깨닫는다. 이 오두막집은 처음부터 모든 것이 불편하고 어설펐지만 잠자리도 편하고 아주 잘 왔다는 생각이 늘 가득하다.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아오신 어르신들의 밝고 자상하신 모습이 이 집 기운을 말해주듯 늘 평화롭다.

 

오늘은 마당에 지천으로 올라온 쇠비름으로 새콤달콤하게 무쳐 먹어야겠다. 음식은 몸은 물론 마음도 다스린다고 느끼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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