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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작성일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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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를 통치하려는 자! 큰 인물은 떡잎때 부터

어디가 달라도 다르다

국민도 속고 나도 속았다

한번 속아본 사람! 근본이 부실하여

국민도 속이고 스스로도 속았다!

 

통치자 자신이 가슴이 넓고

국민을 두려워 할 줄 알면

유능한 스승이 저절로 찾아오고

자신도 무능하고 국민을 가벼이 여기면

요괴에 홀려 나라가 위태롭고 결국은 패망한다

 

무학왕사(無學王師)”

호는 무학이고 이름은 자초(自超)이다

아버지는 박인일(朴仁一)이요

어머니는 고성 채씨(古成 蔡氏)

1327.9.20. 경상도 삼기군(지금의 삼가)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 채씨가 하늘에 아침태양이

품속에 안기는 꿈을 꾸고 잉태했다니 일거일동이

어릴 때부터 범속을 초월한 신동으로

주위를 끌었다고 한다

 

고려 제31대 공민왕2(1353) 27세 되던해

단신으로 원나라 연경(38백리길)으로 가서

인도스님 지공(指空)선사를 만나 합장예배를 드리자

고려사람은 모두 죽었구나

지공선사의 이 말은 무학왕사의 법력을 인가한 것으로

 

다음해 정월에는 원나라 서울에서

선풍(禪風)을 떨치고 있는 법천사(法泉寺)

나옹선사를 보고는 그대는 타국에 와서 죽으려고

밥을 먹지 않는가?”라는 선문선답을 나누었다

 

1356(공민왕5) 귀국한뒤

양산군 삼북면 천성산 원효암(天聖山 元曉庵)

주석하시는 나옹선사께 문안드리니

나옹선사 제자들 가운데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 자신이 그릇이 작고 마음 씀씀이 비좁은자

덕망있고 유능한 재사, 가까이 하기 겁을 내고

자기 자리 침탈당할까 시기질투 표출되어

함께 더불어 대사(大事)를 도모할 수 없다는 것

 

나옹 선사 이를 미리 예견하고

무학왕사에게 법전증표(法傳?)를 전수하고

해주 신광사(海州 神光寺)로 옮기면서

무학왕사도 함께 떠난다

 

이때 태조 이성계는 동북면 도원수로

안변에 주재하던중 어느날밤 꿈에

일천집(千家)의 닭이 동시에 울고

낡고 허물어진 헌집에 들어가

서까래 셋을 짊어지고 나오는 꿈을 꾸었다

 

이성계는 꿈해몽을 잘하는 이웃집 노파에게 여쭙자

참 좋은 꿈입니다. 여기서 서쪽 30리길에

안변 설봉산 아래 토굴에서 공부하는

신승(神僧) 무학왕사를 안내 받아

자초지종 꿈 얘기를 하자

스님(무학왕사)은 정중히 옷깃을 여미고

 

참 잘 오셨습니다. 기다리던 중입니다.

서까래 셋을 짊어지셨으니

()자를 뜻하는 것이며

천가(千家)의 닭이 일시에 울었으니

고려 왕조가 망하고 새 왕조가 들어서고

왕위에 나아갈 징조이니

혼자서만 명념하시고 함부로

천기누설말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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